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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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월) 소돔같은 이스라엘
- 느헤미야강
- 2018-07-23
- 537 회
- 2 건
이제 사사기는 마지막 이야기로 접어듭니다.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은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한 레위인입니다.
그는 레위인이었음에도 불구하 고 첩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베들레헴 출신의 첩은 음행을 하고는 베들레헴 아버지 집으로 도망하여 넉 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레위인은 첩을 데리러 장인의 집으로 가서 고대 근동의 통상적인 대접인 3일을 넘겨 닷새까지 보내게 됩니다.
결국 닷새째 되는 날 해 지기 전 출발하여 기브아에서 밤을 보내게 됩니다.
레위인이 기브아에서 밤을 보 내려고 한 것은
기브아가 동족인 이스라엘의 베냐민 지파의 거하는 땅이 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읍 거리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이 나 그네들을 영접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얼마나 무정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떠난 삶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그들을 인도한 것은 레위인과 같은 동향인 에브라임 산지 출신으로 그곳에 우거하는 노인이었습니다.
레위인이 이 노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한 말은
그들이 얼마나 신앙의 허울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우리는…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데..”
노인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지만, 기브아의 깡패 같은 존재들이 노인의 집에 와서
동성 강간을 위해서 손님을 내어놓으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이 상황은 롯이 소돔에서 경험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새 이스라 엘 백성 안에 이런 더러운 풍속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노인이 손님인 레위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의 결혼하지 않은 딸과 레위 인의 첩을 내어주겠다고
깡패들에게 제안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 니다.
결국은 레위인이 자기 첩을 내어주게 되고 이 불쌍한 첩은
밤새도록 윤간을 당하고 집 문 앞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비정한 레위인은 일 찍 잠에서 일어나 집 문 앞에 누워 엎드러져 있는 첩에게 ‘일어나 가자’ 고 말합니다.
첩의 죽음을 확인한 레위인은 시체를 열 두 토막을 내어 각 지파들에게 보내
기브아에서 자기에게 행해진 일을 호소합니다.
개인적 저주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의 저주를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체의 토막을 받고 사정을 알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경악을 하게 됩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레위인의 첩은 불쌍하게 죽어갔고 시신도 훼손되었 습니다.
레위인은 시대의 어두움이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 다.
그가 첩을 가진 것이나, 첩을 깡패들에게 내어주고도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무정함이나 다 시대상을 보여줄 뿐입니다.
기브아의 모습, 그곳 깡패들의 모습은 무정하고 더러운 이스라엘 백성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 받은 소돔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폭력과 두려움이 가득 찬 사회입니다.
왕이 없언 시대, 법이 없고 믿음과 신뢰가 모두 깨어진 시대가 사사시대 였습니다.
믿었던 자기 민족이 오히려 더욱 큰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볼 수 밖에 없는 시대임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누가 딱히 선이 고 누가 악이라고 구분하기도 어려운,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섞여 있는 시대가 이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를 보고 있는 것인지, 과거 사사 시대를 보고 있는 것 인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모든 혼란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왕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과연 나는 지금 누구를 나의 왕으로 섬 기고 있는가를 물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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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07-24
-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고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삿19:29)"
오늘의 본문은 타락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죄악된 모습이다 라고만 이야기 하기에도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 이들에게
만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제사장은 첩을 두고 또 그 첩을 불량배에게 내어주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불량배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성욕을 채우고자 했다.
또한 밤새 윤간을 당한 여인이 목숨을 거두자 그 시체를 토막내서 12지파에
보내는 제사장의 모습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죄가 만연한 세상 속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악한지를 잘 보여준다.
마치 멸망 당하기 직전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모습이 묘사 되어 지고 있다.
이러한 어두운 세상에서 제사장은 그 시대의 흐름에 매몰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세상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사명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 속에 나타는 제사장은 시대의 흐름과 크게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대에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악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모습이다.
이 시대도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모습들이 만연해 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경제적 이익과 물질이 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다.
세상이 이야기하는 성공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것이 더 우선이 되야 함을 그리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어야 함을 증거하는 삶을
살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 부터 세상을 따라 살아가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한다. -
- john 18-07-24
- 삼류 소설에나 등장할법한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성경에 등장한다.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기브아 사람들은 마치 아브라함 때의
소돔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타락하고 비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지 않는 사회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다가 이러한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생각해본다.
그것은 본문(1절)에 나온 대로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 되셔서 그들을 통치하시고,
백성들은 온전히 그분의 이끄심을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
하나님보다 육신의 정욕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아 자아의 요구대로 살았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삶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졌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은 삶은 언제든, 얼마든 패역해 질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나 역시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성도라는 이름을 가졌다 해도
내 삶에 하나님이 왕이 되시지 않으면 이들과 같이 타락할 수 있다.
그저 상황과 조건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을 뿐이지
하나님께서 왕 되시지 않는 삶의 결과는 언제나 죄에 죄를 더한 삶이다.
이토록 비참한 상황에 이르지 않기 위해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루하루, 매순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며,
실제로 왕 되신 하나님의 뜻대로 내 자신을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먼저는 내 마음을 지키며, 또한 나의 언행심사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왕 되심이 실제로 나타나도록 나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 백성의 삶은 실제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이다.
내 삶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 된 복을 진정으로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