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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수) 삿21장_모두가 왕이었던 이스라엘백성들
- 느헤미야강
- 20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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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건
이스라엘 연합군이 베냐민 지파를 심판함으로 베냐민은
600명의 남자만 남고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어느 지파든 베냐민에게
자신의 딸을 주는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맹세도 하여
베냐민을 완전히 멸절시켜야 한다고 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급한 맹세에 대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곧 후회하게 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 지파 중에 한 지파인 베냐민이 완전히 멸 절을 당할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이일 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이들이 찾은 첫 방법은 그 때 이스라엘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자,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심판하여 거기서 여인을 만들어 주는 것 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야베스 길르앗이 이스라엘의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순수한 처녀만을 남겨두고 모두 죽입니다.
살아남은 여인의 숫자는 400명이었으나 이들만으로는
베냐민의 600명의 숫자를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실로의 여인들이 절기를 따 라 춤추러 나올 때,
그 여인들을 베냐민 사람들이 붙들어 가도록 하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부모들이 내준것이 아니리 자신들이 한 약속도 지키는 셈입니다.
그렇게 해서 베냐민 사람들은 아내를 얻고 자신들의 기업으로 돌아가 성읍을 건축하고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각자 자신의 지파, 가족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사사기의 마지막이 이렇게 끝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5절)
1. 이스라엘은 스스로 자신의 지파 중 하나를 멸절시키려고까지 했다가 후회합니다.
이스라엘의 연합군은 베냐민을 심판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들을 진멸하려 고 하다가,
그들이 거의 진멸당하고 대가 끊어지게 되었다는 현실에 직 면하자
그제서야 자신들의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주신 기업과 한 지파를 스스로 없애는 우를 범할 뻔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하는 정의감에서 할 수 있는 잘못입니다.
베냐민의 잘 못에 대해 징계하겠다는 정의감에서 시작했지만,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 이 되어 한 지파를 전멸시키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뻔 한 것입니다.
도를 넘치는 심판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옳고 맞아도 도를 넘어서는 안됩니다.
이는 자신의 판단과 인간적인 공의를 절대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지나친 확신은 오히려 하나님을 반하는 일을 행하게 만드는 결 과가 되었음을
역사는 오히려 보여주고 있음을 기억하고
확실하더라도 겸손할 수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이스라엘은 자신의 한 맹세로 인해 스스로 매이면서,
그 맹세를 풀기 위해 또 다른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고 꼼수를 발휘합니다.
뒤늦게 깨달은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러 나 자신들의 한 맹세가 있기 때문에 쉽게 그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됩니다.
베냐민 남자들에게 여자를 주지 말것을 맹세하였는데, 생각해보니
베냐민이 모두 죽게 되면 그들의 기업을 이어갈 사람이 없게 되는 거 였습니다.
그렇다고 이방여인과 결혼하도록 허락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이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총회에 참여하지 않은
야베스 길리앗(단 지파의 한 성읍)을 심판하면서(죽이면서) 그들에게 서 처녀만 살려내
이들을 베냐민 사람들에게 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충분한 방법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실로에서 행해 지는 축제일에 춤추러 나온 여자들을 임의로 데리고 가라고 허락하면,
그렇게 함으로서 부모들은 자의적으로 딸을 주지 않은 셈이 되니
스스로 약속을 어긴 것이 되지 않은 것이 되었습니다.
모두 꼼수로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왕이 되어 자신의 감정대로 심판하다가 보면, 문제가 발생하고
스스로 맹세한 것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풀어야 할 상황이 되면,
자신의 맹세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꼼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꼼수에 불과하지 온전 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엉뚱하게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만 죽임을 맞게 되고,
실로의 여인들만 잡혀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왕이 되었을 때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3. 그들에게는 참된 왕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그로 인 해 생기는 문제를 푸는 방식에도 원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다음에는 왕이 세워지는 이야기인 사무엘서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어야 하는데 인간들이 왕이 되어가는 역사이야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것은 한 개인의 삶에도 문제를 만들어 냈지만,
이스라엘 전체에도 큰 위기를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사사기에 종종 언 급되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 스로 왕이 되었던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왕이 되고, 아담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순간,
인류는 자신의 운명과 생명을 스스로 파괴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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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7-26
-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사사기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은 사회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하나님이 왕 되시지 않은 개인이
얼마나 죄악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과 사회가 타락하는 원인은 왕이 누군가에 달려있다.
나의 생활을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가 있고
기쁨과 감사, 사랑과 평안의 마음이 가득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의 언행심사의 주인이 되실 때이지만
원망과 불평, 불신과 악함이 가득할 때는
늘 내가 내 삶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을 때이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생각과 언어행실에 주인이 되시지 않으면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했듯
나는 늘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그것은 결국 죄뿐임을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왕 되시기 위하여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그분과 더욱 친밀하게 교제하는 일이다.
잠깐만 다른 곳에 한 눈을 팔아도 어느새 내 안에
죄악 된 요소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는 소망 없는 나이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에 주인 되심으로 온전히 나를 주장하시기를 소망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07-27
-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한마디로 두서 없는 모습이라고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베냐민에 대해 그들을 그 지파들 가운데 완전히 소멸 시킬
것 같이 행하다가 또 어느새 그 지파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런 두서 없는 모습은 25절의 말씀은 그들에게 왕이 없으므로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기 때문임을 알게 해준다.
원래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민족이다. 그러나 그들이 신앙을 잃고 하나님의 왕되심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그들은 혼란을 겪게된다.
내 삶의 주인이며 왕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이것을 인정하는 삶을 살 때 나에게 참 평안과 기쁨이
있으며 이것을 거부 할 때 힘들고 혼란스러운 인생을 살게
될것이다.
내 삶의 왕 되신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함으로 내 소견에 옳은
삶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긴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