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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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월) 삼상4장_영광이 떠난 성도와 교회
- 느헤미야강
- 2018-07-30
- 473 회
- 2 건
본문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다만 승리만를 위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습이 나타납니다.
아벡 전투에서 4천명이 전사하는 큰 패배를 겪은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은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이어 내린 결론이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자 였습니다.
그들은 이 사건을 통해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고 회개하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그냥 생각만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았고 분석만 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결론이 언약궤였습니다.
그들이 오해한 것이 있습니다.
중심은 하나님께 없는데 언약궤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순종하지 않는 백성들이 기껏 생각하는 것이란
신앙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자신들의 성취와 성공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일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전쟁은 더 이상 하나님의 전쟁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쟁입니다.
언약궤를 실로에서 전쟁터로 가져왔고 그 자리에는 더러운 자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와 함께 있었다는 언급도 성경은 지적합니다.
블레셋 군대는 언약궤의 존재로 인하여 잔뜩 긴장하게 되었고
그들이 도리어 더욱 용기를 내서 전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은 3만의 손실을 낳는 대패를 당하고
언약궤는 블레셋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날 언약궤 옆의 홉니와 비느하스는 선지자와 사무엘이 전한 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날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아버지요,
사십년을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통치했던 제사장 엘리 역시
그 소식을 들을 때,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즉사하였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소식을 듣고 해산을 할 때,
죽어가면서 아들에게 붙여준 이름은 이가봇이었습니다.
“영광이 없다”, “영광이 떠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틀림없이 성취되었습니다(3:12).
하나님의 영광은 이날의 전투로 인하여 떠난 것이 아닙니다.
언약궤를 빼앗겼기 때문은 더욱 아닙니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사사 엘리가 죽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단지 언약궤를 빼앗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시적으로 느꼈을 뿐입니다.
불순종과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감 그리고 말씀의 감화가 없는 삶이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없고 자기들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자들에게서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거두어가십니다.
이가봇! 무서운 이름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와 신자들의 삶 속에
우리는 이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더 무서운 사실입니다.
저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열심이
저희의 삶을 다시 한 번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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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7-31
-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삼상 4:3b)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원인을 언약궤의 부재에서 찾았던 이스라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크게 오해했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어야 하거늘, 하나님께로 돌이켰어야 하거늘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없어서 패배했다고 생각하다니.
그들이 지금까지 경험한 바,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장소나 물건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신데 그들은 또 다시 자신들의 수준에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모습일까? 생각해 본다.
이것은 오늘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내 생각으로, 내 수준으로 한정짓는 나의 모습.
또한 하나님을 마치 부적처럼 내 필요에 따라 이용하려고 하는 나의 모습.
굉장히 어리석어 보이고 단순해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 나의 어리석음과 연약함, 여전히 하나님을 오해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을 뛰어 넘어서 일하시는 분이고,
단순히 내가 잘 되고 잘 사는 것보다 당신과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하지만 나는 내 수준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내 필요를 따라 하나님을 이용할 때가 많았다.
오늘 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이 때,
지금까지의 나의 이 연약한 모습을 돌아보며,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매사에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로 결단한다.
또한 하나님을 내 수준으로, 내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 능력 등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07-31
- "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아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하니(삼상4:3)"
블레셋과의 전쟁에 패한 이스라엘은 그 패배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엉뚱하게 해결하려고 한다.
그들은 언약궤를 가져오면 그 전쟁에서 승리하리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더 큰 패배를 겪게 되는 것을 오늘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은 분명히 맞다. 그래서 패배한 후 하나님 앞에 우리가 왜 패배했는지
를 돌아보는 것 까지는 바람직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원인이 자신들의 불순종 때문임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처음의 패배 후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며 주님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회개 없이 단순히 언약궤만을 가져왔다는 것은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죄악에서
돌아올 마음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어려움이 다가오거나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때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모습과 달라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승리를 주시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나의 편의와 소원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가운데 이루어 나가는데 그 의미가 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