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8.2(목) 삼상7장_미스바에서 에벤에셀을

  • 느헤미야강
  • 20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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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언약궤가 옮겨진 후 20년동안 보관됩니다. 
20년 동안 아비나답의 집에 언약궤가 있었다는 것은 
여전히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회복하지 못했음을 증명합니다. 
게으르고 영성없던 대제사장 엘리와, 
그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탐욕스러 운 죄악들은 
당시 이스라엘에게 만연해있던 신앙의 한 단면이었습니다. 

불신앙과 무기력, 두려움 앞에서 망연자실하여 있는 중에 
한 사람 사무엘이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 각성을 일으킵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살리라’(3,4)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영적 침체와 무기력에 빠진 원인은 
하나님을 떠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사랑하는 
혼합주의적인 마음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풍요를 가져다줄 것 같은 바알도, 다산을 이룬다는 아스다롯도 
하나님 앞에서 무가치한 것이 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회개이며 영적인 각성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풍요와 성공을 줄 수 있다는 
세상의 달콤한 목소리 속에서도, 진정한 풍요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말씀임을 깨닫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무엘은 
미스바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이게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것은,  
함께 모여 금식하며 회개 기도하는 것입니다(5,6) 
함께 모여 같이 기도할 때 믿음의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습 니다. 
믿음은 홀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감당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것입니다(9,10). 
미스바에 이스라엘이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싸우기 위해 오는 블레셋의 소 식을 듣고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기도하기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기도를 멈추고 싸우려 했다면 패했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셨고, 
하나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기도함으로 승리한 역사를 기억하고자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취하여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승리하심을 기억하게 했습니다(12,16).

에벤에셀!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이것이 분명하면 오늘도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내일(미래)도 도우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안에서 에벤에셀의 하나님 경험이 있기위해 
내 안의 우상제거하기, 하나님께 전심으로 나아가는 미스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한 번의 인생.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도우신 
수많은 에벤에셀들을 남겨두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풍요와 만족을 찾아 다른 신들,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여 진 것은 없는지... 
나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면서 
블레셋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일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와 가치를 심어주신 주님과 함께 
이 세상을 미스바로 세워나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사무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십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이 시대의 사무엘이 된다는 것, 
꿈꾸고 이룰만한 가치있는 목표임을 생각합니다. 
    • john 18-08-0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삼상 7:3)

      여호와의 궤가 기럇여아림에 이십년 간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사모했다고 했다.
      이에 사무엘이 내린 처방은 그들이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전심은 백성들 가운데 여전히 있던
      이방 신들, 아스다롯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전심’이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진심만이 아니다. 전심이다.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과 유익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고는 있어도
      여전히 세상 것을 놓지 못하고, 여전히 더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심이 아니다. 그저 진심 일 뿐이다.

      그러나 진심만으로는 어렵다. 진심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전심이다.
      나 역시도 늘 하나님을 믿노라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지만
      진심만 있지 그것이 전심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여전히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며 붙잡는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기 위해서는 전심이 필요함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 나의 영적인 갈급함을 해소하기 위해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 심령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전심임을 기억하며,
      여전히 내가 붙잡고 있는 나의 욕심, 바람, 의지, 경험, 판단을 내려놓고
      전심으로 나아가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8-04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삼상7:10)"

      하나님께서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주시는 장면이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다.
      언약궤를 빼앗겼던 전쟁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지 않으셨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진정한 회개는 없고 그져 언약궤만 있으면 이길 거라는 잘 못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에 모이게 하고 여호와만 섬기게 하고
      어려움이 찾아 왔을 때 기도하며 주님께 나아갈 때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블레셋의 손에서
      건지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제가 찾아왔을 때 그 문제에 집중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고 또 내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혹시 나에게 여전히 우상이 남아 있지 않은지, 또 내 마음에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나 자신의 신앙을 옳바르게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주님 앞에 온전하고 또 주님의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결코 나를 또 하나님께 나아가는
      나의 삶을 무너뜨릴 수 없음을 고백한다.

      언제나 주님을 바라고 내 자신을 주님 앞에 온전하고 흠이 없도록 돌아보는 삶을 살길 원한다.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고민하고 한 발씩 걸치고 있는 어정쩡한 모습이 아니라 내 온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자의 삶을 살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