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8.4(토) 삼상9장_원하는 것을 주실지라도

  • 느헤미야강
  • 2018-08-05
  • 486 회
  • 2 건
백성의 장로들은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에 대한 거절이기도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을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나라들의 왕이 전쟁을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고 힘이 있어 보였습니다. 
교회가 자신의 부르심과 사명, 특성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매력에 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원했던 이상적 왕을 세워주셨습니다. 그가 사울입니다. 
성경에서 처음 소개되는 사울의 모습은 매력적입니다. 
그는 유력한(부유한) 아버지를 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그만한 미남은 없을 정도로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키는 보통 사람보다 30 cm 정도는 큰 훤칠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멋이 있습니까? 
 
사울은 아비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가 사무엘을 만나게 됩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자신의 일생에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일을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 간다면, 
우리 입에서 수많은 불평들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나귀를 잃어버린 것과 그것을 찾으러 나간 일은 즐거운 일일 수는 없을 것 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사건을 사용하여 사울을 사무엘에게 인도하고 
사무엘은 그 전날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고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한 것은 멋진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눈에 맞는 멋진 왕을 베냐민 지파에서 뽑아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물론 사울은 하나님이 뽑은 왕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백성 들이 원했던 이상형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원한 대로 그런 왕을 주셨습니다. 
사울은 처음의 겸손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언제나 존중히 여길 수만 있었다면 
사람들의 눈에만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도 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깨닫지 못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기도 하십니다. 
그 일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과연 그것을 배울 것인가? 우리는 배우고 살아가는가?

또 한 가지, 사울이 사무엘에게 인도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모든 순간 순간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사건들일지라도 다 하나님의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john 18-08-05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삼상 9:2)

      왕을 세워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왕을 세우셨다.
      기스의 아들 사울. 그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첫 지도자로 세움받은 왕이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지보다
      그의 외적인 모습을 중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백성들의 수준이 그러했음을,
      즉 그의 중심보다 외모를 중시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외모가 출중한 사람도 얼마든지 그 중심이 온전하게 설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사울은-이후의 그의 행실을 보건대 그렇지 못했다.
      준수한 외모만큼 하나님을 향한 중심 역시 준수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의 신앙은 그의 훌륭한 외모를 따라가지 못했다.
      백성들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달랐던 것이다.

      이를 통해 나의 수준에서 보기 좋고, 나의 수준에서 좋게 느껴지는 것이
      늘 좋은 것, 늘 완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나는 자주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결정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결코 나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도 보기에, 먹기에 좋아 보이던 열매를 취했다가 징계를 받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삼기로 늘 결단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삶의 기준은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삼을 때가 많다.
      하지만 보기에, 느끼기에 좋은 것이 늘 좋은 것 만은 아님을 말씀을 통해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삼고 사는 내가 되기를 결단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8-06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배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삼상9:21)"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는 모습이 오늘의 말씀을 통해 나타난다.
      나귀를 잃어버려 그것을 찾으려고 선견자를 찾아왔던 사울은 그 곳에서 사무엘을 만나고
      사무엘을 통해 그가 왕으로 세워짐을 듣게 된다.

      사울은 모든 백성들이 보기에도 왕같은 용모를 지닌 자였고 또 겸손하여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자임을 21절에 잘 나타내고 있다.
      베냐민 지파는 가장 작은 지파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집은 결코 그 지파 중에
      가장미약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1절의 말씀에 그의 아버지에 대해 유력한 자 라고 표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기 보다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 이었음을 보게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쓰신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세우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누구나 교만하고 싶은 마음이 유혹을 한다. 무엇인가 칭찬받고 또 사람들로 인정
      받을 때에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 일을 행할 수 있었노라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언제나 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삶 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또 나 자신의 영광보다는 하나남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낮추고 오직 하나님만을 높일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