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7.10(화) 삿8장-배은망덕

  • 느헤미야강
  • 2018-07-10
  • 508 회
  • 2 건
1. 계속 도망하는 왕들을 추격할 때에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전갈을 보내 미디안을 치되 
벧 바라, 요단 가 수로를 점령할 것을 부탁합니다(7;24,25). 
이어 에브라임 지파는 오렙과 스엡을 쳐서 승리에 공헌합니다(7;3, 8;3) 
그후 에브라임 사람들이 왜 일찌감치 이 미디안과의 전쟁에 자신들을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기드온과 크게 다툽니다. 
이때에 기드온은 자신을 낯주고 에브라임을 높임으로 위기를 잘 대처합니다.
겸손보다 강한 힘은 없습니다. 

2. 기드온과 300 용사는 패주하는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계속 추적합니다. 
피곤하고 지쳐서 숙곳에 이르러 먹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숙곳 방 백들은 기드온과 300 용사가 무슨 힘이 있어서 세바와 살문나를 잡겠는 가 하는 식으로 박대합니다. 
브누엘에서도 같은 박대를 받았습니다. 
300명은 하나님의 눈 앞에는 귀한 숫자이지만, 사람의 눈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패주하는 왕들일지라도 그들을 따르는 군대 는 이미 칼든 자 십이만명이 죽었어도 
일만 오천명이 남아있었으니(10) 기드온의 용사들에 대한 이들의 판단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러머 보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 안에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없었는가를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유일하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었는데, 
신앙의 결핍은 결국 이들을 이기적 목적으로 이끌었 습니다. 
정말로 돕고 격려해야 할 때 그러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이들을 향해 대적들을 쳐서 이긴후에 돌아와서 
식량원조를 거절할 그만한 댓가를 지불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아갑니다. 
결국, 기드온과 300 용사는 이들을 미디안족속을 쳐서 파하고 두 왕을 사로잡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기드온은 두 왕을 그들이 살아 생전에 했던 잔인한 방식대로 처형하였습 니다. 

3. 기드온의 행적은 너무나 놀라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왕으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22). 
기드온은 지혜롭게 이 일을 피하였습니다(23). 
그러나 그의 생애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치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가 있 었지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사 그의 생애에 40년을 태평하게 하셨습니 다. 

첫째,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한 것에 대해서는 잘 대처했으나 전리품 중에 서 귀고리를 달라고 청합니다. 
이 금을 모아서 에봇을 만들어 자기 성읍 오브라에 두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영웅의 에봇을 음란하게 섬김 으로써 
이것이 결국 기드온과 그 온 집에 올무가 되었습니다(27). 
이것은 이미 21절에서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는 아간은 아니었지 만, 세바와 살문나의 약대 목에 장식된 새 달(초승달) 형상의 장신구를 취하였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거룩한 것으로서 아무나 자기를 위 하여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기드온은 자신의 지도력을 과신하고 특별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기드온은 ‘제 일 작은 자’(삿 6:15)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둘째는 ‘기드온이 아내가 많았습니다(30).’ 
아들들이 많아서 이것은 후일 에 참극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9:56). 

4. 마지막 부분을 보면 기드온이 죽은 후, 이스라엘의 태도에서 보여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신 여호와 자신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고, 
바알과 다른 신들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또한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잊고 그 집에 후대하지 않았습니다(35절). 

은혜와 자비의 혜택을 받았음에도 그것을 잊고 다른 신을 쫓으며, 
기드온의 집안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은혜가 없는 이스라엘의 운명이,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숙곳과 브누엘과 같은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우리는 쉽게 은혜를 잊고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우리를 도운 누군가의 은혜를 잊고 삽니다. 
이것이 모두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잊습니다. 
배은망덕! 
심판의 근거가 배은망덕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고 
은혜를 아는 은혜를 배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이형원전도사 18-07-11
      "속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6게 떡을 주겠으냐 하는지라(삿8:6)"


      숙곳의 방백들은 미디안의 두 왕을 추격하는 기드온과 300명에게 떡을 주지 않는다.
      추격하는 자가 추격 당하는 자보다 더 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두 왕에게는 아직도 만 오천명 가량의 군사가 있었고 기드온에게는 300명의 군사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숙곳의 사람들은 패배할 가능성이 더 많은 기드온을
      도와주는 것을 꺼리게 된다.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는 이들의 판단은 크게 잘 못되지 않았다.
      누가봐도 만 오천명과 싸우러가는 삼백명에게는 승산이 있어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삼백명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그 결과는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게 한다.
      우리가 볼 것은 인간적인 계산 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여부에 있다.
      결국 기드온은 승리하게 되고 기드온을 돕지 않았던 숙곳의 방백들은 그에 합당한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역사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는 사람의 계산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난다.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러한 역사하심을 바라보길 원한다.

      내가 잘나서 혹은 내가 노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이 내 삶 속에 가득하게 되길 바란다.
    • john 18-07-11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삿 8:33)

      필요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그들은 어려울 때에만 하나님을 찾고, 어려움을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죄악 된 모습으로 돌이키는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말씀을 볼 때면, 하나님의 능력을 목전에서 경험했음에도
      쉬운 배신과 타락이 체질화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의 이러한 모습이
      바로 오늘 나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된다.
      내 삶을 주관하시며 가장 선하게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매순간 경험하면서도, 조금만 편해지고 조금의 여유만 생겨도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정욕대로 살아가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반복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성경의 역사가 증언해 주고 있다.
      이러한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야 함을 깨닫는다.
      아쉬울 때에만 하나님을 찾고, 내 필요나 요구를 따라 기도하는
      일차원적인 종교생활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매순간 공의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나의 생각과 삶을 살피고,
      그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기억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