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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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목) 삿10장 태평성대야말로 깨어있을때이다

  • 느헤미야강
  • 20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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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0:1~11:11 태평성대는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10장에는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 일어난 두 명의 소사사를 소개하 고 있습니다. 
돌라와 야일입니다. 돌라가 23년, 야일이 22년 다스렸는데, 
그 시대의 평안함을 야일의 아들 삼십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각기 삼십 성읍을 다스렸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그 시대의 평안함이 나태와 안일 
그리고(지도자들의) 부와 권력의 지향과 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사사로 귀 하게 쓰임받았는데 남아있는 기록이 부자가 되었고 
자녀들이 한가락 했 다는 이야기라면 생각해볼 일입니다. 
야일의 죽음 뒤에 일어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상에 붙여진 설명이 이 설명을 더욱 지지해줍니다.
 
바알과 아스다롯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아람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버려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6). 
그래서 하나님은 진노하셨 습니다. 진노하셨다는 표현은 사사기 서론과 옷니엘 때만 나타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암몬과 블레셋으로 열 여덟해를 이스라엘을 학대하게 하셨습 니다. 
특히 암몬 자손은 요단 건너 길르앗(므낫세 반 지파와 갓 지파) 거민들을 괴롭혔고 
요단 강을 건너 유다와 베냐민, 에브라임 까지 치기 시 작했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섬기는 신들에게 가서 청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자기들이 섬기던 신들에게 실컷 빌어보고 나서 하나님께 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 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는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16).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거짓 회개에 마음이 움직 이셨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받는 고통을 견디시기 어려우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기 백성들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은 고통하십니다. 

암몬 족속의 군대가 길르앗에 다가와 진을 쳤기에 이스라엘도 미스바에 모였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사생아 입다입니다. 
그는 길르앗의 아들이었지만 아무런 법적 권 리도 없는 여인의 소생이었기에 
다른 친족들에 의해서 쫓겨나고 만 인물 입니다. 
그는 상당한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쫓겨났지만, 잡류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기 잡류란 도덕적 악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정상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신분의 사 람들을 가리킵니다. 
길르앗의 장로들은 그를 떠올렸고 그에게 와서 사령 관(장관)이 되어줄 것을 부탁합니다. 
비상한 머리의 입다는 승리의 조건 으로 길르앗의 지도자가 될 것을 약속받고서야 사령관직을 허락합니다. 

태평성대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적인 안일함과 나태 로 우리를 인도하기가 쉽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누리 면서도 감사치 않는 것입니다. 
태평성대가 점점 더 영적 감각을 멀게 하 고 세상의 가치들, 
외모, 돈, 지위, 성공, 학벌, 권력, 명예, 쾌락을 추구 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위험합니다. 
우리는 전시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시대를 사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의 경제가 심히 어려운 시대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 자신이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아닌지, 
영적 안일과 나태에 빠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 john 18-07-13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삿 10:6)

      돌라와 야일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을 때 그들은 태평성대를 누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 태평성대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돌라와 야일의 시대에 이어 곧바로 나오는 말씀이 바로 그들의 타락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속되는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며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오늘의 이 평안과 번영이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임을 기억했어야 했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채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누구나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좋은 상황에서, 안정된 환경에서 이러한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그 때 더욱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때에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행하며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죄악 된 우리 인간들의 특징인 것 같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나의 모습이나
      어려움이 없으면 평안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더욱 교만하게 행하며 안일하게, 나태하게 행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결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마치 철이 없는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께서 언성을 높이셔야만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것 같다.
      해를 거듭할수록, 신앙의 연수가 더해갈수록
      더욱 성숙한 모습의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좋은 상황에서, 평안한 환경에서 더욱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하나님을 기억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7-13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삿10: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고 압제자의 손에서 구해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이방신을 섬기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찾아온 것은  블레셋과 아몬 자손을 통한 어려움 이었다.

      또 다시 어려움이 찾아오자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하지만 이번엔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다.
      이미 여러차례 구원의 손길을 베풀었으나 여전히 이방신을 섬기는 그들에게
      다시는 구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가운데 있는 이방신들을 모두 제거하고 여호와를
      섬기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곤고로 말미암아 근심
      하셨다고 오늘 말씀은 이야기 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시다. 그들이 죄악된 모습으로 인해 그들을 다시
      구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들이 돌아와서 다시 하나님을 섬길 때
      그들의 모습을 긍휼히 보시고 마음 속에 근심하셨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또 사사를 세워 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나의 모습 속에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모습이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 속에 남아 계속해서 그들을 유혹했던 이방의 신들 처럼
      나 또한 내 안에 죄악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 내를 넘어뜨리려 한다.
      그리고 때로 이런 죄악의 모습으로 넘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습을
      보며 근심하심을 깨닫게 된다.

      언제나 나 자신을 말씀 앞에 비추어 보며 경건의 삶을 이루어 나가길 소망한다.
      그리고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죄악에게 지는 삶을 살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