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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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금) 삿11장-입다의 이야기

  • 느헤미야강
  •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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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1장. 입다의 이야기에서는 뭔가 다른 특별함이 있다.

입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 들에게 버림 받았다가 구원자로 다시 부름을 받았고, 
사사 시대에는 여 호수아와 그 시대의 장로들이 죽은 후에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아는 자가 없다고 했는데, 
입다는 과거 이스라엘 가운데 역사하신 내용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무남독녀를 자신이 서원한대로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들이게 되는 운명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사사의 독특성을 통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했을까?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1장에서는 사사 입다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입다는 길르 앗이 기생을 통해 낳은 아들입니다. 
그는 큰 용사였으나 원래 부인을 통 해서 나은 아들들이 입다에게 기업이 없다고 하고 
그를 길르앗에서 쫓아 냈고 그는 하는 수 없이 돕 땅에 거주하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입다 주 변으로 여러 잡류들의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암몬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자 위기 의식을 느낀 길 르앗의 장로들은 
쫓아 버렸던 입다를 불러올 것을 결정하여 입다를 찾아갑니다. 
입다는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그들이 길르앗을 머리로 삼 겠다는 제안까지 하자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로 갑니다. 

입다는 먼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왜 이 땅을 치고자 하는 지 묻습니다. 
암몬 자손은 이 땅(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의 땅)이 원 래 자기네 땅이었는데 
너희 이스라엘이 빼앗은 것이기에 도로 찾으려 한 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입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역사적 이야기를 통 해서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에 아르논 지역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 지만, 
그곳은 모압의 경계였지 모압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너희 들이 말하는 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의 땅이라는 것도 
아모리 족속 의 땅을 점령해서 얻은 것이지 너희들의 땅이 아니었다. 
지난 300년 동안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 땅을 도로 찾겠다고 한 적이 없지 않은가?’ 
라는 말로 암몬 족속의 왕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암몬 족 속은 설득되지 않았고 전쟁은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입다는 이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시면 평안이 돌아올 때 
자신을 처음으로 맞는 이를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입다는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무남독녀인 딸이 자신을 처음으로 맞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입다는 고통스러워 합니다. 
입다의 딸은 자신의 운명이 안따까우면서도 자신의 아버지가 한 서원대로 하나님께 행하도록 말하고, 
두 달의 말미를 얻여 여자들과 함 께 자신이 결혼하지 못하고 
처녀의 몸으로 죽게 된 것을 슬퍼하고 돌아 옵니다. 
그리고 서원대로 행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관습이 되어 해 마다 입다의 딸을 위해 
나흘씩 애곡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입다가 왜 이런 무모한 서원을 했을까요? 
그는 협상의 귀재였습니다. 
그는 길르앗 장로들과, 그 다음에는 암몬 왕 과 협상을 합니다. 
이기고 싶고, 이겨야 한다는 마음에 하나님과도 협상 을 한 것이 아닐까싶습니다. 
이것이 맞다면 순전한 동기의 헌신이 아니 었습니다. 
서원으로 하나님과 협상하려고 한 입다의 이 사건은 엄청난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입을 믿는 자는 입으로 넘어집니다. 
우리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잘 하든지 그것을 믿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서 겸손하게 살 뿐입니다. 
하나님과 협상해서 성공을 살 수 있다는 생각 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본문은 서원기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합니다.  
첫째는,  아무때나 하지 말고 결정적인 어려움 앞에서만 해야합니다. 
성경에서 서원기도은 일생에 꼭 한 번 하였지 두번 이상 한 이들이 없습 니다. 
야곱도,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모두 한 번이었습니다. 
본문의 입 다도 단 한 번의 서원기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먹히느냐? 안먹히느냐의 중대한 민족적인 위기 앞에서 
꼭 한 번 서원기도를 하였을 뿐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여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31). 
번제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 뻐하시는 제사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한 서원기도는 이미 서원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잠시 이용하여 응답을 받으려는 속셈이 있는 서원기도는 
이미 서원기도가 아닙니다. 

셋째는,  서원은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입다의 서원은 결국에는 딸을 제물로 들여야 했습니다. 
입다의 서원 때문에 전쟁에서 이기게 되었을지, 
백성들의 회개 때문에 승리케 했는지 두고 두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네째는,  서원은 돌이키면 안됩니다.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35) 
입다는 서원기도한 대로  딸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우리도 위급한 경우에나 은혜 충만한 경우에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서원기도를 할때는 정말로 깊이 깊이 생각하고 
입다와 같은 경우에 처하지 않도록 서원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서원 기도만이 하나님을 기쁘게하여 드릴 수 있기때문입니다. 
    • 이형원전도사 18-07-14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11:31)"

      오늘 말씀에는 입다에 대해 나온다.
      그는 큰 용사 였지만 그 출생의 신분으로 인해 그 형제들에 의해 쫓겨나게 되고
      돕 땅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자 길르앗 장로들은 용사였던 입다를
      다시 데리고 와서 그 백성의 머리와 장관으로 세움으로 암몬과의 전쟁을 준비하
      게 한다.

      협상을 통해 전쟁을 막아보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이제 입다는 전쟁을 눈 앞에 두게 된다.
      그리고 그 시점에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전쟁에서 승리하여 평안히 돌아오게 된다면 그의 집 문에서
      나와서 영접하는 자를 번제로 드릴 것이라는 서원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서원을 통해 자신의 무남독녀를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실제로 그 딸을 번제로 드림으로 서원한 것을 지키게 된다.

      입다의 서원은 어쩌면 민족의 운명을 결정 지을 수 있는 전쟁을 책임지는 자로써 절박한 마음으로
      했던 기도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그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예전에 받았던 서러웠던
      기억을 뒤로하고 민족의 영웅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욕심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떤 마음이었던지 그의 서원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서원의 기도가 없었더라면 과연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한 일이라면 승리를 허락해 주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섣부른 서원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함께 하심을 구했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우리도 삶을 살다보면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서원을 하게 된다.
      그런데 때로 이러한 서원이 곧 하나님과의 협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서 주시면 내가 무언가를 하겠다는 내용의 서원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섣부른 서원은 곧 그 기도를 지키지 못함으로 그 사람을 범죄하게 만든다.

      서원을 할 때 그것에 대한 순수한 동기가 내 안에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의 유익을 구하는 서원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서원을 하기 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가 비극적 결말을 맺는 서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또 내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서원이 되길 기도한다.
    • john 18-07-14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삿 11:35)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서원했던 입다는
      결국 자신의 서원으로 인해 딸을 제물로 바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이런 것까지 하게 하셨을까 의아한 말씀이기는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열심과 하나님과의 약속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는 입다의 이러한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입다의 태도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다.
      먼저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
      입다의 자세가 귀감이 된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많은 이들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입다는 달랐다.
      또한 그가 하나님께로 향한 서원을 돌이킬 수 없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참으로 큰 도전을 준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나님과의
      거래를 하고자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쉽게 약속을 저버렸던 나이지만
      입다는 자신의 딸을 희생시키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또한 이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하나님을 향한 입다의 열심을 배우게 된다.
      본문의 나오는 입다의 모습은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기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사 입다의 모습을 통해 깨닫고 배운 말씀이 나에게도 실제 되어 나타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