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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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토) 삿12장_또 에브라임지파, 내가 중요했던 사람들

  • 느헤미야강
  • 201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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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위기였던 암몬과의 전쟁이 끝나자 에브라임 지파가 무장을 하고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에게 와서 자신들을 전쟁에 부르지 않은 것 때문에 
입다와 그 집을 불살라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늘 이스라엘 안에서 권력을 행사하기를 원했던 지파였습니다. 
하지만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을 향한 그들의 반응은 정도를 벗어난 것이었스니다. 
여기에는 입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그 권세를 공고히 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그들이 늘 무시해오던 길르앗 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작용 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에 거주하던 므낫세 반 지파와 갓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므낫세는 에브라임과 함께 요셉 지파입니다. 
에브라임은 므낫세 지파 절반이 요단 동편에 거주하는 것에 대해서 ‘도망 자’들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이런 무시가 배경에 깔려 있어 보입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를 달랬었지만, 입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에브라임 지파를 불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에 브라임은 응하지 않았었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는가? 
남은 것은 전쟁이었습 니다. 

전쟁은 입다와 길르앗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에브라임은 42,000명이 나 죽었습니다. 
요단 나루턱까지 지키면서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완전한 복수를 실행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에브라임은 크게 약화되었고 
이후 블레셋의 세력이 일어날 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하나됨을 상실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입다는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6년을 다스리고 죽었습니다. 
이후에 소사사 3명이 소개됩니다. 
입산은 베들레헴 사람이라고 소개되나 지파는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가치인 지파 개념이 사라지고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떠나 떠도는 사람들이 많았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런 실상을 사사기의 남은 부분에서 보게 됩니다. 
입산은 아들 30, 딸 30을 다 외국인과 결혼시켰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금하셨던 정치적 동맹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은 사람의 남은 흔적이 아들 딸을 다 이방인과 결혼시켰다는게 전부입니다.
쓰임받았으니 출세했다. 잘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 다음 인물은 엘론입니다. 
스불론 지파라는 것과 10년을 다스렸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는 인물입니다. 

다음은 압돈입니다. 
이도 역시 지파 개념으로 소개되지 않고 비라돈 사람이 라고 지역만 소개됩니다. 
압돈의 모습은 권력과 부를 축적해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떠나고, 
영적 무지 가운데서 어둠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 다. 
이런 상황에서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 우리 시대는 어떤가? 
외부의 적인 사단과 싸우고 사명을 감당하기 보다는 
내부의 문제들에 휩싸여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언제나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에브라임의 동기와 다르지 않은 생각들로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중요하다’고 하는 생각이야말로 언제나 교 회를 깨뜨리는 불신앙의 암적 요소였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십자가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고, 
하나님께서 성 령을 부어주시는 것만이 소망입니다. 
    • john 18-07-15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삿 12:11)

      입산, 엘론, 압돈. 입다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사사였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별다른 업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 나라의 대리 통치자로서 그들에 대해 기록한 것이
      고작 많은 자녀들을 통혼시킨 이야기, 살다가 죽은 이야기,
      자녀가 많았던 이야기뿐인 것을 볼 때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라고 사사라는 귀한 직분을 허락하셨는데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 또 그분의 백성들을 위하여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단지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없고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만을 남겼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보다 자아였던 것이 아닐까?
      자아가 하나님보다 앞서면,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사리사욕을 추구한다.
      오늘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가운데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핑계로 나의 만족과 유익을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내 뜻을 행하며 이루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내가 되기로 결단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7-15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삿12:4)"

      에브라임은 암몬 자손을 물리친 입다에게 와서 시비를 건다.
      그들은 그 전쟁에 자신을 부르지 않은 일로 시비를 걸어 왔다.
      입다는 그들을 불렀으나 응답하지 않았다고 항변하였고 결국 이들의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입다는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들에게 시비를 걸러온 에브라임과 전쟁을해서
      승리하게 되고 사만 이천명을 죽이게 된다.

      이 전쟁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바람직한 싸움은 아니었을 것이다.
      에브라임은 자신들을 안불렀다하고 또 입다는 그들을 불렀다고 항변한다.
      누구의 말이 옳았을까?
      만약 이 전쟁의 승리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결코 거짓을 말한 자에게
      승리를 주시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동기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같은 민족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오는
      에브라임의 행동은 결코 옳은 행동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한것을 선대하시고 악한 것을 물리시는 하나님 이신 줄 믿는다.

      나의 삶에 거짓이 없기를 그리고 에브라임과 같은 오만한 태도가 없길 바란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또한 사람들 앞에 정직히 행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선대할 수 있는 선한 삶을 살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