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7.19(목) 삿16장_최후, 더 늦기전에
- 느헤미야강
- 2018-07-19
- 550 회
- 2 건
1. 거룩한 사역, 타락한 삶—블레셋 창녀의 집에서(1~3):
삼손은 계속해서 사사로 있었고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쳐 그들로 하여금
함부로 이스라엘을 다룰 수 없도록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는 존재였지만,
개인의 삶으로서는 타락한 삶을 살아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삼손의 착각이 여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신이 블레셋 창 녀의 집에 들어온 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이려고 대기하는 것을 눈치채고
자기의 힘을 과시함으로 그들의 도모를 물리칩니다.
2. 삼손과 들릴라(4~22):
삼손이 들릴라를 ‘사랑했다’는 표현에서(4) 이미 삼손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암시를 볼 수 있습니다.
삼손은 머리가 깍이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힌 후 눈을 뽑혔는데(21) 이미 삼손의 눈은 멀어있었습니다.
역시 돈에 눈먼 들릴라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은 자신의 힘의 근원을 밝힌 삼손은 머리털을 깍이고 힘을 잃게 됩니다.
여기서 삼손이 들릴라와 사랑 놀이를 하면서 크게 잘못 행한 것은
지금 이방 여인과 놀아나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믿음의 비밀과 신령한 은혜를
장난거리로 여기고 있 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것을 그렇게 싸구려로 여길 수 있 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삼손의 힘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23~31):
오늘 이 본문에서 보여주는 메시지는 삼손의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삼손은 머리가 깍였지 만 힘을 써보려고 하였으나 허사였습니다(19,20).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 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머리가 깍이고 눈 이 뽑히며 블레셋의 노리개가 된 후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비로 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의 소중함도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있지 않을 때에는
우리가 그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드디어 삼손은 하나님께 처음으로 ‘사사로서’ 합당한 기도를 드립니다.
자기를 강하게 하사 원수를 갚도록 구 하는 것입니다(28).
삼손은 힘의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임을 이제야 고백 합니다.
이것은 단지 머리가 자랐기 때문만이 아니라(22b)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그에게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삼손은 자 기가 생전에 죽인 블레셋 사람보다 더 많은 수를 죽이면서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습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적용이 있습니다.
첫째, 거룩한 사역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하나님은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사역을 감당한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타락한 생활을 정당화해주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둘째, 영적으로 눈이 멀어서 하나님께서 신령한 은혜로 주신 것들을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싸구려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못하는 자에게서 하나님은 그 은혜를 가 져가십니다.
에서의 예를 생각해보십시오.
셋째, 삼손의 힘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것도 다 우리의 특별한 능려과 재주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남보다 더 많이 기도해서 얻은 것이 아 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시간 도 걸리고 값비싼 인생의 수업료를 내기도 합니다.
삼손은 두 눈이 뽑히 고 인생이 망가진 후에야 비로서 이 값비싼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우리 역시 늦기전에 이 진리를 깨닫고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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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07-21
-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삿16:20)"
삼손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였고 또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함께 주셨다.
삼손도 사사로써 블레셋 사람들로 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블레셋 여인을 사랑했고 그로 인해 어려움이 찾아오게 된다.
그가 사랑했던 들릴라에게 결국 자신의 힘의 원천을 발설하게 되고 이를 통해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였지만 또 그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능력의 근원은 결국 하나님께 있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보게 된다.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 남아 있는 줄 알았지만 여호아께서
이미 자신을 떠남으로 그 힘 또한 없어지게 된 것을 알지 못하였다.
결국 그가 사사로써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힘을 주셨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뜻에 합당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함께 해야한다.
그것은 나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만약 나의 삶이 주님의 뜻과 다른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서 그 뜻과 능력을 거두시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주님의 뜻이 나의 삶에 나타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 체험할 수 있는 삶을 갈길 기도한다. -
- john 18-07-21
-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삿 16:1)
하나님께로부터 사사로 세움받은 삼손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며 보호하는 사명을 감당했지만, 그의 삶의 모습은 결코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명자로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과 자신의 삶을 별개의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것은 그에게 있는 어떤 특별한 능력 때문이 아니라, 즉 그 능력만을 사용하시고자 함이 아니라 그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시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사사기 말씀이 증언하는 삼손의 모습은 이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다면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나 또한 주어진 사명과 삶이 일치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기만하면 이후의 삶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 때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 삼손의 모습을 통해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나,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 모든 삶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라는 자세로, 나의 모든 삶과 언행심사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며 드러내기를 결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