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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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금) 삿17장_축복을 걷어찬 사람들

  • 느헤미야강
  •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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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7장 자기 눈에 좋은 것을 추구하다 하나님의 축복을 걷어찬 사람들 
 
사사기는 서론(1:1~3:6), 본론(3:7~16:31) 그리고 부록(17~21장)으로 구 성되는데, 
이제 17장은 부록 부분의 시작입니이다. 
본론은 소사사 6명과 대사사 6명의 이야기였습니다. 부록은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17~18장은 ‘미가’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고 
19~21장에서는 한 레위인과 첩의 이야기를 통해서 타락상을 드러냅니다. 
더 이상 사사는 등장하지 않지만,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 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는 주제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17:6; 18:1; 19:1; 21:25).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안식의 땅에서 안식 을 누리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런 삶,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눈이 멀어서 살아갔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미가라는 인물이 사사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뽑힌 샘플입니다. 
미가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 같은 분은 이 세상에 없 다”는 고백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름 값을 하지 못합니다. 신앙은 명목 일 뿐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엄청난 액수의 은전 일천 일백을 훔쳤다가 
어머니의 저주가 무서워서 자백과 함께 돈을 돌려 줍니다. 
이것이 사사 시대 가정에서의 부도덕의 양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찾은 돈을 여호와 께 거룩히 드린다고 선언하지만, 
결국 하는 일은 아들을 위해서 신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3). 
신앙은 여기서도 명목일 뿐입니다. 
신상을 만드 는 목적은 오직 ‘아들을 위해서’입니다. 
아들의 축복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은 자식이 우상이 되어버린 시대상을 보여줍 니다. 

미가는 자기 신당에 신상을 둔 것으로 부족해서 제사장의 옷인 에봇을 만들었고 
신의 뜻을 알아내는데 쓰이는 우상 드라빔을 만들었습니다. 
그 리고 한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제사장은 레위인으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과 하나님의 뜻은 더 이상 이 들에게는 무의미한 형식일 뿐이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왕 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실상이라고 폭로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 한 레위인이 등장합니다. 
유다 지파에 속해 사는 자로서 베들레헴에 우거하는 젊은 레위인이었습니다(7). 
이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아서 여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은 유다의 베들레헴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십일조의 의무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십일조에 의해서 살아가야 했던 제사장과 레위인 들이 떠돌게 되어버린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자기 아들을 제사장 삼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미가는
(이것은 그가 기본 적인 율법의 내용을 결코 모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사람에 게 자기의 개인 제사장이 될 것을 요청합니다. 
이 레위인은 약속된 보수 와 조건을 만족하게 여겼고, 
결국 돈, 생계에 굴복하여 거룩한 제사장직 과 레위인됨을 팔아넘기는 
종교 장삿군으로 전락한 레위인의 모습을 보 여줍니다. 

모든 것이 타락했습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요, 레위인 마저 타락했습니 다. 
어느 하나 온전하게 남은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모든 것 은 자기의 축복과 번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번영의 복 음을 구하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레위인은 생계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장삿군이 되어버렸습니 다. 
번영과 축복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어 버렸습니 다. 
그들은 번영과 축복을 원했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번영과 안식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눈에 좋은 것을 추구했 기에,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걷어차버렸습니다. 
여기에 남은 것은 모든 종교의 껍데기들이고, 말잔치들 뿐입니다. 
명목상 그들은 여 전히 이스라엘이었지만, 
그들의 삶의 실상은 가나안 사람들과 조금도 다 를 바 없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모습은 아닌가? 생각해 볼 일입니 다. 
    • 이형원전도사 18-07-21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삿17:11)"

      17장에는 미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사사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신앙관을 가졌는지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뜻을 위한 삶이 아닌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신앙만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특별히 한 레위인의 모습은 사명보다는 자기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미가의 집에 살면서 그에게 복을 빌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만족하게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는 별개로 자신을 아들처럼 대해주는 미가의 집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찾기보단 지금 당장 나에게 무엇인 유익이 되는지를
      더 관심갖고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가를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명자로 세우실 때는 분명한 이유와 사명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며 또 그것을 바라보는 삶을 살긴 기도한다.
      미가와 레위인의 모습이 나에게 똑같이 나타나질 않길 소망한다.
    • john 18-07-21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삿17:5)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움받는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이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는 미가라는 한 개인이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우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한 레위인을 또 다시 제사장으로 삼는다.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를 사는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오직 자신을 위한 하나님을 만들어 내고 자신을 위한 제사장을 세우는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문제가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 전체의
      모습임을,
      또한 오늘 우리의, 나의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 믿노라 하는 많은 성도들의 모습,
      특별히 나의 모습에도 이러한 모습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대로, 말씀하신대로가 아닌
      내 뜻에 맞는, 내가 좋을 대로 하나님의 모습을 만들어 내며 결국 내가 믿고 싶은대로 믿어 버리는 나의 모습.

      사사기 시대의 타락상이 결국 오늘 이 시대의 모습이며, 이것은 곧 나의 모습이었다.
      오늘 이러한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또한 우리가 어떤 모습과 방법으로 그분을 믿어야 하는지
      늘 말씀을 통해 확인하며 그에 합당하게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다.
      더이상 나를 위한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모습으로 믿음의 길 걷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