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31218(월), D6묵상, 눅6;27-35

  • 최고관리자
  • 2023-12-18
  • 153 회
  • 0 건

# D6묵상 교재 가이드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본성에 완전히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사랑이란 자신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며 억압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체적으로 해를 입거나 강도를 당하거나 노예가 된 세 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이러한 태도를 구체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말해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학대에 대처할 수 있는 훌륭한 지침이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때때로 교회 안의 사람들 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친절하다는 이유로 자신에겐 사랑이 넘친다고 자부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쉽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사랑할 때 훨씬 더 의미 있게 경건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사랑은 보답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보답 여부와 상관없이 한결같이 사랑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가장 비슷한 것입니다.

 

# 본문내용: 이해하기

 누가복음 6장의 앞부분에는 두 개의 안식일 논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는 문제와 사람을 고치는 문제였습니다(1-11). 바리새인들은 문자에 매여 율법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짐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놓쳐 버렸습니다. 이들은 율법의 본질이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주님을 죽일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기준 삼아 정의 내린 율법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이 바로 당시 바리새인들의 문제였다면, 이것은 그 시대만의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나름 하나님을 섬긴다는 열심을 품지만, 말씀의 본질에 대한 무지는 결국 주님을 대적하는 자리로 그들을 인도하게 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 묵상 본문에서 예수님을 참 사랑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27-38).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은 그들이 그 때까지 알고 있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이 가르쳤던 사랑은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 사이의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랑의 한계를 허무셨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무조건적으로, 아무 제한 없이, 끝까지, 남김없이 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닮는 일입니다(35).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결국 모든 것을 갚아 주실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싶으면 우리 자신도 은혜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반드시 삶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2. 질문하기

1) 여러분을 짜증나게 하거나 심지어 해를 끼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은 동료, 친구, 지인이 있나요?

2) 이번 주에 그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3) 하나님은 왜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계속 사랑하시나요?

 

3. 묵상과 반응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제자들을 택하시고 나서 얼마 안되어서이다. 아직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주님이 가야 할 십자가의 길에 대해서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불가능해 보이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함께 하시며 훈련시키시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성령이 임하면 주님의 기대대로 살 것임을 믿으셨다. 이 일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때도 마찬가지였다. 3년이 지나고서도 여전히 제자들은 누가 큰가를 따지고 있었고 주님의 기대대로 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주님을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아직은 아니었지만 결국 제자들은 주님의 기대에 걸맞게 변화되었고 사랑의 길을 가는 자들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원수를 사랑하고, 이 뺨을 치거든 다른 뺨을 내주며,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까지 내어줄 자신이 없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처럼 나도 때가 되면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 때문이다. . 나의 옛 사람이 죽어 내게 남은 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될때, 여전히 서툴지만 때가 되면 그리 살 수 있을거라 기대하신다. 오늘 나의 부족함때문에 낙심하지 않을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