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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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수) 여호수아 15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6-20
  • 412 회
  • 2 건
여호수아 15장에는 유다 지파가 차지한 땅에 대한 경계가 어떻게 되는 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그 과정 중에서 유다 지파인 갈 렙은 헤브론의 아낙 자손들을 죽이고 그 성읍을 정복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갈렙은 드빌까지 정복하기를 원했고, 정복한 자에게 자신의 딸인 악사를 아내로 주는 제안도 합니다. 
옷니엘은 드빌을 정복하고 악 사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유다 전역을 정복하기는 했지만,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들은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까지 이스라엘과 함께 살고 있게 됩니다. 

조금더 성경통독과 은혜를 나눕니다.

1. 유다의 기업(영토)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정복해야 할 본토로 들어와서 정복사업을 마치고 제일먼저 땅에 대한 기 업을 언급한 지파는 유다지파입니다. 
이것은 유다지파가 앞으로 이루게 될 이스라엘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 지 파 안에는 예루살렘이 있고,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헤브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후에 지속적인 갈등을 일으켜 이스라엘의 적이 되는 블레셋의 중요한 도시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다가 차지한 영토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고, 
궁극적으로는 유다 지파를 통헤서 다윗과 메시야로 이어지는 혈통이 형 성되게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베들레헴에서 일어납니다. 
유다 지파는 신약 뿐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부터 그 중심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갈렙의 헤브론 정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14장에서 언급했던 갈렙의 자신감있던 고백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것도 충분히 넉넉히 성취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갈렙은 아낙의 세 아들을 멸하고 헤브론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드빌(기럇 세벨)까지 점령하려 했고, 그것을 점령하기 좋은 방법(자 신의 딸을 상급을 줌)을 동원하여 
조카인 옷니엘은 그 성읍을 정복합니 다. 실제로 옷니엘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줍니다. 
악사는 지혜로운 여인 이었고, 남편에게 큰 유익을 주는 여인이었습니다. 
출가하기 전 아버지 에게 샘물에 대한 요구를 하고 결국은 윗 샘과 아랫 샘을 얻어왔습니다. 
결국 옷니엘은 큰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갈렙의 헤브론 정복은 간신이 이긴 전쟁이 아닙니다. 
갈렙이 남은 힘을 다 쏟아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갈렙의 에너지와 열정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헤브론을 정복한 갈렙은 더 나아가 드빌까지 욕심을 냈습니다. 
자신이 하기 어려운 것은 포상제도를 통해서 다른 장수를 통해 성취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는 과정 중에서 옷니엘이라 는 장수가 발견되었습니다.
최소치로 살것인가 최대치를 향해서 도전할 것인가에 대한 자극을 주는 인물은 갈렙입니다.

3.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 습니다. 
오늘 본문은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될 땅, 예루살렘은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마무리 합니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여부스 족속이 강력했는지 아니면 예루살렘이 철옹성과 같이 견고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둘 다일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은 정복하지 못한 상태로 후 대의 누군가를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정복해야 할 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이 큰 승리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완전하지 못했 다는 것을 중간 중간에 보여줍니다. 
이는 훗날 사사 시대를 살아가는 후 손들에게 남겨진 과업이 됨을 말해 줍니다. 

모든 것을 내 시대에 완전하게 마칠 수는 없습니다. 
모세도 그렇게 하지 못했고,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은 후대에까지 이어져서야 완성되는 경우가 있고, 중요한 일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에는 부족함이 없고 미진한 부분이 없습니다. 
완벽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부끄럽지 않은 것이 됩니다. 

복음 외에 어떤 것도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것에는 여유를 가지고 자신에게 좀 느긋해지는 것도 필요할 듯 합니다.
    • john 18-06-21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수 15:63)

      가나안 정복전쟁 시의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원주민을 쫓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 땅을 정복해야 할 그들의 임무는 후대에게로 넘겨졌다.
      결국 삼백 여년이 흐른 후에야 다윗에 의해 그 땅이 온전히 유다 자손에게 속하게 된다.

      왜 이들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을까? 쫓아내지 않은 것인가, 못한 것인가?
      여부스 족속이 강한 민족이기에? 예루살렘은 점령하기 어려운 요새 지형이었기 때문에?
      아니면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나태함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어찌되었든 이 역시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일이며, 또 그로인해 다음 세대들에게
      예루살렘을 정복해야 할 사명이 주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때의 유다 백성에게 허락하신 사명은 여기까지일 수 있겠다는 것을.
      훗날 다윗 시대의 사람들이 이 땅을 온전히 정복했을 때 그들은 더욱 큰 기쁨과 감격,
      또한 놀랍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감당할 수 있다.
      내가 더 원한다고 더 할 수 없고 내가 덜 원한다고 덜 할 수도 없다.
      물론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그 범위나 모양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리에서 주신만큼의 사명을 깨닫고
      감당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함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고, 완성하고, 열매를 보아야지만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과 내 주관대로 행할 때가 많았고,
      그렇기에 내 생각이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은
      그저 씨를 뿌리는 일까지만 일수도 있음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계획하신 일들,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을 나는 다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고, 내가 어떤 업적을 남겨야 하고,
      내가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열매를 보아야 된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하나님 앞에 교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맡겨주신 자리에서 맡겨주신 만큼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사실 그 마저도 제대로 못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허락하신 만큼이 최선임을 고백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6-22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수15:14)"

      갈렙이 했던 믿음의 고백처럼 실제로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에게 맡겨진 땅의 거민들을 내 쫓게 된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성취하심을 울는 보게 된다.

      믿음의 고백과 실천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믿음으로 고백하고 또 고백한대로 행한자에게는 분명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집 같이 그 믿음이 견고하게 선다고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하셨다.

      비록 여러가지 환경과 여건이 나에게 불리할 것 같고 또 때로는 그일이
      어려운 일 인것 처럼 보일 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됨을 늘 체험하게 된다.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 있다. 그 곳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어렵고 힘들고 또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 실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