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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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목) 수22장 영적민감성과 둔감함

  • 느헤미야강
  • 2018-06-28
  • 477 회
  • 2 건
본문은 요단강 동편에 거하겠다고 주장한 르우벤과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모든 전쟁이 다 마치고 요단 동편 지파의 군사들은 여호수아의 축복을 받으면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요단 강을 사이에 두고 거한다는 것은 여호와 신앙에서 벗어나거나 
이스라 엘의 일체성에 위기를 초래할 수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래 서 여호수아는 그들을 보내면서 단단히 다짐하였습니다(5). 
그들은 전쟁에서 얻은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갔는데, 
요단 강 나루를 지날 때 갑자기 그들은 단을 쌓을 것을 결정하고 
실로에 있는 단과 같은 모양의 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분열의 위험을 초래한 사건이 되 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은 흥분하여 요단 동편 형제들의 행위 를 정죄하였습니다. 
그들이 단을 쌓은 것은 바알브올의 범죄나 아간의 죄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남은 것은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표들을 먼저 보내서 진상을 조사하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요단 동편의 형 제들이 단을 쌓은 것은 제사의 목적이 아니라, 
그들도 이스라엘의 기업을 나누어받은 이스라엘 백성임을 증거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오해는 풀렸고, 이스라엘은 동족 간의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교회를 분열하게 할까요?
 수많은 오해들입니다. 아니, 이 오해들을 부풀리고 사용하는 마귀의 역사입 니다. 
교회에서 형제와 형제 사이에, 그룹과 그룹 사이에 이간하고 분열시 키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함으로써’ 이런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는가요? 
처음에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민족이 반응했던 것처럼 흥분해서 
전쟁을 할 준비를 하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우리가 그렇게 할 뿐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빠질 수 있을 위험을 오늘 이 본문은 주의깊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요단 서편의 이스라엘 공동체가 요단 동편 지파들이 단을 쌓은 일에 대해서 보인 반응이 주는 긍정적 교훈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하나됨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입니다. 
이것을 저해하고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될 수 없었고, 
이 신앙에서 거룩함과 하나됨을 유지하려는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는 오늘날 교회가 배워야만 하는 자세입니다. 
바알브올의 범죄와 아간의 범죄를 떠올린 것은 그들이 그 사건들을 통해서 영적 교훈을 배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우리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죄에 대한 과도한 반응이 아니라, 죄에 대한 둔감함입니다. 
여호수아 다음의 사사기 이야기는 그와 같은 주제를 다루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여호수아의 시대를 지나 사사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죄에 대해서 너무나 합리화하고 익숙해져버린 시대. 
교회에서 조차도 그 민감함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민감하게 행동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광야에 서 지은 죄에 대한 상처와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었고, 
최근에 가나안에 들 어와서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당한 재앙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 한 형벌의 경험이 그와 비슷한 것 혹은 그 가능성이 있는 일에 있어서 조차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오늘의 문제는 무엇인가? 
죄에 대한 과도한 반응이 아니라, 죄에 대한 둔감 함입니다. 
죄에 대해서 너무나 합리화하고 익숙해져버린 시대. 
교회에서 조 차도 그 민감함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 john 18-06-29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수 22:11)

      가나안 정복전쟁을 마치고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던 두 지파 반 사람들은
      요단 언덕 가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을 기억하게 했다.
      하지만 요단 서편에 있던 지파들이 이를 보고 오해하여
      두 지파 반 사람들과 더불어 전쟁하기 위해 모인다. 

      요단 동쪽의 지파들이 민족을 향한 열정과 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지만 이 일로 괜한 오해가 생겨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잘 해결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민족이 분열하게 될 큰 위기를 맞이할 뻔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특별히 신앙 공동체에서 매사에 신중해야 함을 배우게 된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가장 먼저는 늘 하나님께 묻고
      혹여나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이 오해를 사거나 상처받게 되지는 않을까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한 가지, 자초지종을 듣지도 않은 채 쉽게 오해하고 쉽게 상처받는 그릇된 습과도 버려야함을 깨닫는다.
      다른 사람의 의도나 계획은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난하기보다
      순간적으로는 언짢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역시 주님의 뜻을 구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오늘 내 속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이 연약한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너무도 자주 오해하게하고, 또 너무도 자주 오해하며 판단하는 내 모습이지만
      오늘 말씀을 거울삼아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언행들을 삼가며
      반대로 다른 사람을 쉽게 오해하는 성급함을 주의해야겠다고 결단한다.
      이렇게 공동체 가운데 선한 영향력, 화평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내가 되기를 사모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6-29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아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수22:3)"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는 요단 동편에서 그들의 땅을 요구했었다.
      그리고 그 땅을 받는 조건으로 나머지 지파들과 가나안 정복에 함께 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그 뜻에 따라 책임을 다하였다.

      이제 그들은 그 책임을 다하여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가면서 전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도 함께 가져갈 수 있게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책임을 다함으로 그들은 축복 속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있게 된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모든 믿는 자들에게 명령하신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을 듣고 그것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또 그 뜻을 발견했을 때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며 그 말씀을 이루어 가야한다.

      이러한 삶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잘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분명하신 책임과 뜻이 있다.
      내가 이것을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 가느냐는 내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때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이러한 근본적인 삶의 이유를 놓치고
      살아갈 때도 많이 있다.
      내 삶의 우선 순위가 분명해 지길 원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나를 향한 그분의 명령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것이 내 삶의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부분을 차지하는 삶을
      살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