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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월) 삿1장-역사를 바라보는 두 관점
- 느헤미야강
- 2018-07-02
- 498 회
- 2 건
오늘부터 사사기를 읽어갑니다.
본문은 여호수아서에서 이미 소개된 내용들도 포함하여 여호수아 사후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이제 분배 받은 기업에서 각 지파는 남아있는 가나 안 족속을 내보내야 하는 전쟁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누가 먼저 올라가 싸워야하는지를 하나님께 묻습니다.
1:1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고 사사기를 시작함으로써 사사시대라는 이스라엘의 역사 시대를 규명해줍니다.
하지만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여호수아의 생전에 일어난 일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2:8에서 여호수아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이 서론이 여호수아의 죽음을 전후하여 일어나는 상황들이며
이 상황이 얼마나 어두움의 그림자들로 덮이고 있 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가나안 정복과 관련되어 크게 두 지파가 부각됩니다.
유다와 요셉지파입 니다. 유다는 시므온과 연합하고, 베냐민과 같이 언급됩니다.
주로 유다 의 성공적인 정복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아도니 베섹을 심판한 장 면과 옷니엘을 통해 기럇세벨을 정복한 내용,
모세의 장인 겐사람들의 후손들이 유다와 함께 하게 된 것(모세와의 연결점을 의도한 듯) 등
유다의 정복을 성공적으로 그려줍니다.
물론 골짜기 주민들은 철병거로 인 해 정복하지 못했다고 유다의 한계도 언급합니다.
유다와 대조되는 지파는 요셉(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입니다.
이들은 벧 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지파들의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므낫세와 에브라임, 스불 론, 아셀, 납달리도 그 땅 주민들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단 지파의 경우는 오히려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서 산지로 몰 려나갔습니다.
그들 가운데 거주한 가나안 족속들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각지파가 강해진 후에야 노역을 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다른 지파에 비해 두드러지게 보이는 지파는 요셉지파인데
이 들이 단 지파를 쫓아낸 아모리 족속을 제압하여 노역을 시킨 것으로 언 급됩니다.
사사기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1. 사사기를 읽어가는 포인트를 잘 보아야 합니다.
첫째, 사사기의 시작에서 유다와 요셉 자파에 대한 기록이 강조되고 있 습니다.
둘째, 완전한 정복을 이루지 못하고 시간적인 간격을 두고 점진 적으로 정복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오랜시간 가나안 족 속과 함께 상존하는 시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읽으면서 생각할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먼저,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 펴보면서 읽으십시오.
둘째, 가나안 땅에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과 이스라엘 사 이의 역학관계를 살피면서 읽으십시오.
셋째, 다른 지파에 비해서 상당히 위축된 <단지파>의 운명에 대해서 살 피면서 읽으십시오.
사사기 1장은 사사기서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디에 주목해서 읽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에 서 초점을 잃지 않으려면
위의 세 가지 항목을 기본적으로 주의하면서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완전한 정복이면서 충분하지 못한 정복이었습니다.
사사기 1장에서의 이스라엘 정복에 대한 이야기는 여호수아서에서 본
이스라엘 정복이야기하고 분위기가 다릅니다.
사사기는 아직도 정복해야 할 곳이 많고 쉽게 정복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시간적으 로 앞선 이야기를 다룬 여호수아서는 모든 정복이 잘 마무리 된 것처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혼동이 올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서의 정복이야기 관점은 예언적인 성취에 초점을 둔 것이고,
사사기의 정복이야기는 실재적인 현상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 문입니다.
같은 기간의 역사 기록에 있어서 열왕기서와 역대기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서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우리 성도 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두 관점입니다.
언약의 성취시점인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지금 현실에서 보는 역사적 한계에 대해서도 볼 수 있어야 합니 다.
여호수아서는 완성을 지향하고 승리를 지향함으로 연약한 성도로 하 여금 소망을 바라보게 합니다.
반면 사사기는 현재의 불완전함을 설명함 으로서 영적인 긴장을 유발시킵니다.
성도는 이 두가지 내용을 공히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며,
상황과 시대에 따라 그 강조점을 다리하면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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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7-03
-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삿 1:27)
여호수아가 죽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까지 차지하지 못한 땅들을 정복해야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쫓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하나님의 명령이자 약속이었으므로 그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반드시 쫓아냈어야만 했고, 쫓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후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잘 나타내 주듯이
결국 이들은 쫓아내지 않았던 원주민들로 인해 여러 가지 위기들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 당장은 괜찮을 것 같고, 지금 당장은 큰 영향이 없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종국에는 큰 위험과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 내 마음이나 생각 속에도 지금은 크게 느껴지지 않고 영향력이 없어보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들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혹은 이런 작은 생각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하는 안일한 자세로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쫓아내지 못한 원주민들이 결국 그들의 올무가 되었던 것을 보며
지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악한 생각이나 마음들이 결국은 내 길에
덫과 같은 존재들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내 안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요소들을 날마다 떨쳐버리며
작은 죄의 모습, 하찮게 느껴지는 악한 습성들 모두를 제거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07-03
-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삿1:29)"
오늘 말씀 속에는 여호수아가 죽고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 지파대로 받았던 기업을
얻기 위하여 계속해서 거주민들과의 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런데 말씀을 읽다보면 거주민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고 그들과 함께 거주하였다는
말씀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상황에서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을 쫓아 낼 수 없었던 것은 거주민들이 강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들을 굳이 다 쫓아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남아 있던 민족들로 인해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우리 마음 속에도 완전히 몰아내야 할 죄악된 마음이 혹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지
못하도록하는 내 마음 속에 욕심이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마음은 평상시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것이 씨앗이 되어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거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만들 때가 있다.
내 마음에 남아 있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지 못하는 그것이 결국 내 발목을 잡게 될 수 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릴 수 있는 삶을 살길 원한다. 내 마음 속 욕심과 죄악을 작은 것 조차
어떤 모양으로도 남겨놓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내가 죄악 된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또 은혜 가운데 넉넉함으로
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언제나 주님만을 100% 의지하면서 내 마음 속의 죄악과 욕심을 온전히 버리고 살아갈 수 있는
혹은 그렇게 살기 위해 몸부림 치며 노력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