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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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 민수기 33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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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33장은 출애굽 여정의 회고와 가나안 정복 명령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광야 노정을 전반적으로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명을 따른 것이었습니다(2). 1~49절은 현재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지나 온 광야 노정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고, 50~56절은 이 노정을 마친 백성에 게 땅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전자는 과거의 경험이라면 후자는 현재의 부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의 거민을 몰아내고 땅을 소유하라는 하나님의 명령(50~53)은 민 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 다. 즉, 이스라엘 안의 죄의 문제를 다루는 차원과 함께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모든 민족을 심판하실 것을 예시하는 내용입니다. 
신약성경은 성도들 이 장차 세상을 심판할 것을 말씀합니다(고전 6:2). 이 가나안 거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은 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로서 그들의 새긴 석상과 부어만 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산업으로 주시는 그 땅을 취하여 살아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서 주신 땅이므로 만족하고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단 지파가 자기들이 받은 땅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북방으로 땅을 발견하고자 갔다가 결국 은 이스라엘의 지파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은 하나의 중요한 교훈 입니다. 

땅의 분배에 대해서는 제비뽑아 나누되 각 지파의 수에 따라 분배한다는 원칙을 주셨습니다(54).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경고가 나옵니다(55~56).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믿 음의 순종에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 땅 거민을 몰아내지 않으면 그들이 눈 의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슬프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적당한 선에 서 타협함으로써 가나안 모든 족속을 다 몰아내는데 실패하였고 후에 이들 은 가시가 되어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하게 만들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난 40년의 광야 노정이 자세히 기록되었듯이 우리 인생의 노정도 이렇게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도와주셨다는 기록이며,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이 적혀있는 기록입니 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기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에 대하여 만족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불만족하여 다른 것을 추구하고 살지는 않는가? 자족함을 배우는가?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유익이 된다고 하였는데(딤전 6:6), 자족함이 없어서 우리의 경건이 헛된 것이 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셋째로 적당한 타협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백성을 다 몰아내지 않은 것은 그런대로 적당히 살만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굳이 전쟁을 하느니 대충 살만 하다고 느껴서 안주해버린 까닭입니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엄정함보다는 편의주의로 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믿음의 순종에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도록 주어진 모든 약속은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기에, 기도가 필요하고 순종이 필요합니다.
    • 이형원전도사 18-05-30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민33:55)"

      이제 가나안 정복이 시작되어 약속에 땅에 들어가게 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파대로
      제비를 뽑아 각 각에 주어지는 기업을 받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기업을 나누는 방법을 말씀하시면 함께 그 땅에 거주하는 원주민
      을 반드시 다 몰아내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원주민을 다 몰아내지 않으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우상이 분며이 이스라엘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고 그것은 곧 이스라엘을 죄 가운데 빠지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원주민을 다 몰아내지 못하여 결국
      이스라엘은 그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안에 죄의 가능성을 남겨 두었을 때 그 가능성은 언젠가 현실이 되어서
      나를 죄가운데 빠지게 하고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다.

      내가 약한 것, 또 나를 유혹하는 것들을 내 안에서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
      그것을 온전히 몰아내기 위해서는 항상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충만해져야 하고
      주님의 뜻이 내 삶가운데 나를 주관해 가야 한다.

      적당히 정당화 시키면서 하나님과 공존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의 욕심과 정욕을
      허용하게 될 때 어느새 그것들이 차지하는 자리는 더욱 커지고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아닌 또한 내 욕심과 정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내 삶을 주관해
      가길 원한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어떤 모양으로도 모든 죄악을 몰아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 john 18-05-31
      “너희의 종족을 따라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은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조상의 지파를 따라 기억을 받을 것이니라” (민 33:54)

      거주할 땅을 분배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도 없을 텐데
      제비를 뽑아서 분배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조금은 황당하기도 하다.
      근거도 없이, 명목도 없이 그저 제비를 뽑으면 비합리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에 따라 분배받을 기업의 수도 달라진다는 전제가 있기는 했어도
      땅 분배와 같이 심사숙고해야 하는 중요한 일에 있어서 제비를 뽑는 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방법이야 말로 가장 공평하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누구나 좋아 보이는 땅, 평탄하고 아름다운 땅에 살고 싶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그 땅에 살 수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받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고백임과 동시에
      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최선임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었다.
      내 생각, 내 기대, 내 판단과는 다를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그것이 최선이리라는 고백.

      오늘 나의 삶에도 이러한 고백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의 모든 인생여정을 가장 선하게 이끄시는데,
      나는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주어진 상황 속에 만족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최선임을 경험했다.
      내 자아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셨다면
      그것이 최선이며, 그것이 가장 선한 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여전히 나는 허락하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좋은 여건과 환경을 구할 때가 있지만
      허락하심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며
      허락하신 은혜 가운데 자족하는 삶을 사는 내가 되기로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