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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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민수기 22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5-17
- 463 회
- 2 건
민수기 22장에서 24장은 발람과 발락에 대한 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발람은 신약 성경에서 벧후2;15, 유1;11, 계2;14절에서 인용되고 있을만큼 하나님의 교회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준 사건이며 가장 악하고 교활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압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므로(창19:37 참조) 모세에게 그들을 공격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신2:9). 그러므로 모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지만 두려워함으로 오히려 이스 라엘을 대적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 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2). 발락은 두려워하였고, 번민하였습니다(3). 그래서 발람의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발람은 혼합주의적 선지자의 역할 을 하던 사람이었고 발락은 그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부탁합니다.
발람은 첫번째 요청을 거부합니다(7~14). 발람은 하나님의 지시를 들었 고 순종하여 가기를 거절하였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요청에 마음이 흔들 렸습니다(15~20).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덜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서 도 그는 약간의 말미를 두고 하루를 기다려보라고 합니다. 이것이 타협입 니다. 여기서 발람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돈과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시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발 람의 마음속에 있는 본심을 다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결국 발람은 발락의 저주를 수락하여 길을 떠났습니다(21~35). 발람은 나귀를 타고 길을 떠납니다. 나귀는 고대 근동에서 가장 고집 센 동물로 여겨집니다. 이 고집 센 동물을 통해서 하나님은 발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발람의 길을 막으려고 서서 칼을 빼 어들고 서 있는 것을 나귀는 보았지만 발람은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고 또한 바람의 눈을 보게 할때에야 하나님의 사자를 보게 됩니다. 발람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만 하나님의 사 자를 발락과 함께 가되 대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하라고 보냅니다.
이 사건의 교훈이 무엇일까요?
나귀가 발람의 채찍과 천사의 칼 사이에 잡혀있었듯이, 발람은 발락의 요구와 하나님의 금지 사이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발람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미련함을 고집 센 나귀를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발람은 자기가 ‘임의로’ 말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 씀’(38)만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들은 바 있으나 운명에 자기 인생을 맡기는 도박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럼에도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압에게 전하도록 강요된 하나님의 나귀였습니 다.
우리의 타협이 이와 너무나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을 몰라서 타협하고 타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지만 약간의 여지를 남겨 두는 태도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이것은 위험천만한 일이고 불신앙이고 타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전한 믿음으로 반응하는 삶되어야 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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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5-18
-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민 22:19)
이스라엘의 진군을 두려워하던 모압의 왕 발락은
발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를 들은 발람은 이를 거절하였는데,
그는 발락의 두 번째 요청에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니라고 하셨으면
그 말씀을 결론으로 삼고 두 번째든 세 번째든 거절했어야 하지만
발람은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두고 보자며
발락이 보낸 사신들을 자신과 함께 유숙하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31절).
오늘 이러한 발람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로 결론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여지를 두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일을 선택할 때나, 또한 바라고 기대하는 일들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대답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소원하며 고집을 피우는 나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니라고 하셨으면
그 말씀을 결론으로 삼아야 함에도
그래도, 그렇지만, 그럼에도… 늘 여지를 두며 내 뜻대로 행하기를 원한다.
그 결과가 결코 나에게 유익하지 않음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발락이 보낸 사신들을 보며-사신과 함께 많은 선물도 보내지 않았을까?-
흔들렸던 발람의 모습과 같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님에도
더 유익할 것 같고, 더 즐거울 것 같고, 더 행복할 것 같아서 고민하는
오늘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붙잡고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상황이나,
나의 기준, 생각, 판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
이로 인해 늘 내 삶의 결론을 진리로 삼아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대로 사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05-20
-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민22:19)"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였다.
그래서 첫 번째 발락의 청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절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로 발락이 사람을 보냈을 때
그는 마음이 흔들렸다. 분명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내려졌음에도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자신과 함께
유숙하며 하루를 기다려 혹 하나님이 다른 말씀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뜻대 발람의 바람이 서로 다르게
작용한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분명 발람은 그들과 함께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그를 가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기로 결심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아직도 세상의 것을 놓치 못하는 모습은
나에게도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 해야함에도 때로는 세상 속에서의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선택해야햔다.
이것은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단호하게 그 뜻을 따름으로
유혹이 틈타는 일이 없도록 깨어 있어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