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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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출애굽기 8장 통독 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3-15
  • 522 회
  • 3 건

8장 참 신앙의 증거는 고난이 지나간 후의 자세다


8장에는 세 개의 재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구리, 이 그리고 파리 재앙입니다.

먼저 두번째 재앙인 개구리 재앙은

애굽의 술객들도 모방할 수 있었습니다(7).

개구리는 애굽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악한 권세의 상징으로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으로 표현됩니다(16:13).

바로는 이 재앙에 대해서

내가 이 백성을 보내겠다고 응답했습니다(8).

하지만 재앙이 그치고 숨이 통할 수 있음을 볼 때에(15)

마음을 완강케 하여 번복하였습니다.

이 개구리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왕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10).

 

세번째 재앙은 이의 재앙이었습니다.

이 재앙부터는 술객들이 따라 하지 못하였습니다(18).

술객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인정했습니다(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마음은 강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네번째 재앙인 파리의 재앙이 이어졌습니다.

이 재앙부터 나타나는 특징은

하나님께서 고센 땅을 구별하셨습니다(22).

이로써 하나님은

나는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고 선언하십니다(22).

바로는 하지만이 땅에서 희생을 드리라고 하고(25)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말함으로써(28)

타협을 시도합니다.

또한 그는 모세에게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요청합니다(28).

재앙이 떠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완강케 하여 허락을 번복합니다(32).

바로의 마음은 분명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여호와가 누구관대..”라고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이란 말을 그 자신이 쓰고 있고,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모세에게 요청합니다.

 

바로 이제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종종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여겨지는 고난을 당할 때

사람들의 마음은 약해져서 교회를 찾기도 하고,

또는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어려움과 고난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그의 태도와 자세입니다.

어려움이 지나간 후에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엎드리고 있는가?

하나님의 권위 앞에 복종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는 어려움이 지나간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나는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묵상하십시오.

 

    • 야긴과보아스 18-03-15
      하나님의 권능


      본문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세 번째 이 재앙이다.
      다른 재앙들은 미리 경고를 주셨지만
      이 재앙은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
      애굽의 술객들이 따라하지 못했다.
      애굽에는 재앙이 임했으나
      이스라엘이 머문 고센땅에는 임하지 않았다.
       
      세 번째 재앙이 있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속에 의문이 있었을 것 같다.

      모세와 아론이 나타나서 우리가 좋아진 것이 뭐가 있냐?
      우리가 전에는 그래도 노예였어도
      재료를 애굽 사람이 다 주어서
      벽돌만 찍어내면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 재료도 가서 구해야 되니
      더 괴로워지게 되지 않았는가?

      첫 번째 재앙으로 애굽의 하수가 피로 변하고
      물이 악취가 나서 마실 수가 없는데
      그 재앙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같이 내렸다.
      억압에 재앙까지 같이 당했다.

      하나님 따르는 것이 이런 것인가?
      물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 재앙도 내고 하는데
      애굽 술객들도 똑같이 따라하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과 애굽신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 의문을 날려 버린 것이
      세 번째 이 재앙이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자
      애굽 술사들이 고백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19절)
      애굽신과 하나님이 현격하게 차이가 났다.
      능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세 번째 재앙에서부터 이스라엘에는 임하지 않았다.
      애굽과 이스라엘에게 구별이 있었다.

      나를 구별하시고 보호하시고 능력 주셔서
      내 앞에 있는 대적을 물리치고 장애를 물리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그런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나를 붙들고 계신다.
       
      내가 그 손을 자꾸 놓는 것이지
      하나님은 나의 손을 절대로 놓지 않으심을 기억하자.
      천국 갈 때까지...

      단지 내가 그 손을 잡았다가 놨다가 할 뿐이라는 것을...
    • 이형원전도사 18-03-16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출8:15,19절 하반부)

      본격적으로 애굽에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시 시작했다.
      8장에서는 그 중에 개구리, 이, 파리의 재앙이 임했다.
      이 재앙들을 시작으로 이제 바로의 마음에 변화가 시작된다.
      재앙이 임할 때 그는 이스라엘을 보낼 것을 허락했다가
      재앙이 멈추면 그 마음이 완악하여 져서 그 허락함을
      번복하기를 반복한다.

      재앙이 연이어 일어나며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남이
      확실해 지는 상황 속에서도 바로의 마음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은 그 다음 재앙을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바로의 마음 조차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 가운데 이루어짐을 보이시고 여호와가 참 하나님임을
      이스라엘과 애굽에 보이셨다.

      이러한 과정을 자신의 삶의 환경이 어려워 짐으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제 그들을 지도자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또 그러한 일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함께 이루어진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바로의 마음을 변화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멈추게 하시는 것이 더 효육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이 완전히 하나님을 의지 할 수 있도록
      그 능력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다.

      나의 생각이나 뜻을 앞세우거나 세상적 논리를 앞세우기 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에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 john 18-03-16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출 8:28)

      애굽에서 떠나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요구하는 모세에게
      바로는 그 요구를 들어줄테니 너무 멀리가지는 말라고 이야기 한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허하는 관대한 말 같지만 여기에는 바로의 저의가 있었다.
      너무 멀리가지 않아야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고, 뒤쫓기에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늘 이 바로의 이야기가 마치 끊임없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이 세상의 요구처럼 느껴졌다.
      이 세상도 나에게 “하나님 믿는 것 좋다, 신앙생활 하는 것 값진 일이다.
      하지만 너무 집중하지는 말아라, 모든 것을 다 걸지는 말아라,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라.”하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미혹을 받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이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적절히 조화롭게 살며 너무 하나님께만, 신앙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적당히, 타협하며 하는 신앙생활을 마치 대단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신앙이라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멀리 가야했다.
      그들은 애굽에서 아주 먼 곳으로, 애굽과는 가치관, 생활양식, 삶의 태도가 전혀 다른 곳으로 가야했다.
      그곳에 참 은혜가, 행복이, 자유가, 만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상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
      이 세상에 벗하며 살지라도 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하나님께 너무 집중해야한다.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 생활양식,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복을 온전히 누리는 길이다.
      그럴듯한 세상의 요구에 반응하여 적당히 타협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고 그분의 요구에만 반응하는 내가 되기로 결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