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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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 출15장, 마라의 쓴물
- 느헤미야강
- 2018-03-23
- 569 회
- 2 건
1. 승리의 찬가(1-21)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애굽의 바로와 군대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이스라엘 자손의 감격을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모세와 미리암은 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찬송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며 그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결코 말만은 아니었습니다(2). 모세의 말대로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는 용사였습니다(3). 하나님은 이런 은혜와 힘으로 자기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실 것을 모세는 알고 있습니다(13, 17). 모세에 이어서 미리암이 모든 여인들을 인도하여 찬송합니다(20).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 날의 감격은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마라의 쓴물과 치료의 하나님(22-26)
홍해 사건이 지나고 삼일만에 이스라엘 자손은 물을 얻지 못하여 도착한 곳이 마라였습니다. 물이 있으나 쓴물로 먹을 수 없게되자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합니다(24)! 그들이 큰 일을 보고 여호와와 모세를 신뢰한 사람들이란 말인가(14:3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한 나무를 물에 던지게 하사 쓴물을 단물로 바꾸사 백성들을 먹이셨습니다(25) 이것은 하나님의 시험이었습니다(25). 순종의 시험이었고,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을 치료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셨습니다(26). 이스라엘은 마라 사건을 통해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배워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을 통해서 두 가지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첫째로, 광야의 시험은 우리의 악함과 우리들 속에 있는 숨은 교만을 제거하므로 겸손하게 만듭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에게는 아무 선함도 없음을 보여주시고자 합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광야로 이끌어내실 ??하께 행하시고 그의 임재와 사랑을 나타내셨음과 같이, 이 광야에서도 택한 백성들의 계 속적인 실패에도 늘 구속해 주시는 능력과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뿐만아니라 우리에게도 황량한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 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고, 위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입니다. 시련과 낮추심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낮추려는 목적이 아니라(약 5:11) 아버지의 오래 참으심과 선하심을 인간에게 보이시고자 하는 수단 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음을 처음으로 말해줍니다. 홍해를 건넌 사건은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신자들이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롬6:3,4). 이스라엘이 홍해를 지난 것은 그들이 이제 부활한 처지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로 들어갔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그와 더불어 하나가 되었음을 믿고 그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시인하고 그리스도께서 광야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풍성함과 은혜를 깨닫는 것과 동시에 이 세상이 우리에게 쓸쓸하고 황량한 광야임을 알게 됩니다. 자연인에게는 세상이 매력을 주겠지만 영적인 사람에게는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은 다만 허무와 안타까움일 뿐입니다. 광야는 나그네의 장소요,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여행할 때 지나가는 곳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자만이 그곳에 집을 지으려 할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불신자들은 지나칠 광야에 머무르고 싶어 합니다.
마라 사건은 하나님만이 성도의 소원에 만족을 가져다 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요7:37). 만족할 줄만 알고 붙들었던 것이 쓴 실망이 되고 만 것들. 이 세상의 즐거움, 부, 명예가 쓴 것이라는 것을 발견한 때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백성을 인도해내시기 위해 행한 위대한 일들을 체험한 후에 순조롭고 안일한 길을 예비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얼마나 잘못것인지 도 보여주십니다. 이제 첫 믿음의 길을 걷거나 바른 믿음이 형성되지 않 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하기가 쉽습니다. 영원한 즐거움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른손에 달려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광야(세상)에서의 거의 모든 실패가, 광야(세상)가 무엇인가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간증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라는 여정의 첫 단계에서 여행의 진정한 본질을 선포해주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기서 왜 불평을 했을까요? 그들의 눈이 더 이상 하나님께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을 감으면 불평 밖에는 나올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라는 또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평하는 백성들을 부드럽게 다루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중재자의 부르짖는 간구에 대한 응답이었기때문입니다.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 하실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않 게 하려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모세가 쓴 물에 넣은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자체로는 쓴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단것이됩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 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 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마라는 십자가, 그 수치의 십자가, 세상이 주님의 증표로 여기는 그 십자 가로 인하여 달게 변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를 위하여, 그의 당한 것처 럼 수치와 배척을 참고 견디면 그와 연합한 단맛의 실상이 비록 마라와 같다 할지라도 마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엘림의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70그루(27)
이스라엘은 마라를 지나서 엘림에 이르렀습니다. 엘림은 마라의 완성입니다. 엘림은 열 두 물샘과 종려 70주가 있는 휴식처였습니다. 엘림은 하나님이 그와 더불어 순종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주시는 만족을 말합니다. 이 심령의 즐거움, 영혼의 만족은 말씀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데, 여기에 있는 열 둘의 물샘과 칠십 주의 종려 나무가 가지는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도로 택정하여 보내신 바로 그 숫자입니다(눅 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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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03-24
-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출15:24)
사람에게 마실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은 곧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광야에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충분히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마라에 이르러 생명수라 생각했던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는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절망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이러한 절망은 사흘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셨던
홍해의 기적을 잊게 만들었다.
그들은 분명 홍해를 건너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한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13절)
고백하며 찬양하였다.
하지만 삶의 위기가 찾아오자 바로 원망하는 백성이 되었다.
이 때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어 그 쓴 물을 달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삶의 위기에 순간 우리는 원망할 것인가? 부르짖을 것인가?
하나님을 찬양하던 모습에서 원망하는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
그러한 순간에도 주님을 의지하여 기도할 것인가?
믿음을 견지해 나간다는게 때로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다.
원망할 수 밖에 없는 순간에도 감사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절대적인 믿음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는 길임을 알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 john 18-03-25
-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출 15:19)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사들이 뒤따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은 신실하신 은혜와 자비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큰 구원을 보이셨다.
밤새 불어온 동풍으로 인해 바다가 갈라진 역사.
이스라엘은 갈라진 바다 밑으로 건너가 마른 땅을 지나갔다.
바다가 하룻저녁에 마른 땅이 되었다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다.
오늘 우리는 글로, 말로 보고 들었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을 수 있겠으나
사실 이는 엄청난 사건이다. 전무후무한 놀라운 사건이다.
어떻게 바다가 마른 땅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이면 그 일을 가능하게 하실까?
이스라엘이 이토록 큰 은혜를 받은 민족임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동시에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나 또한 이러한 기적과 같은 은혜를 맛본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성품이나 기질을 잘 아는 바,
은혜가 아니라면 하나님을 알 수도 따를 수도 없는 완악한 존재.
이러한 나에게도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사실은 홍해가 갈라진 것과 같은 엄청난 기적임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다.
오늘 나의 삶 가운데도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내가 만난 기적 중의 기적,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게 된 역사!
이 역사야말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이며
오늘 내 삶에 허락하신 가장 크고 놀라운 기적이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감사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