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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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창세기 38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2-20
  • 563 회
  • 1 건
38장 불성실한 언약 백성을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방법
 
본문에 나오는 유다 가정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요셉 이야기의 막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상 전체 이야기는 야곱 가정의 이야기입니 다(37:2). 
유다는 형제들을 떠나 가나안 여인과 결혼했는데 이는 족장들의 결혼 원 칙에 위배되는 것이었습니다(1~2). 
그의 세 아들 중 첫째 아들 엘은 다말 과 결혼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므로 하나님은 그를 죽이셨습니다 (7). 
악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보여지는 창세기의 주요 주제입니다. 
둘째 아들 오난은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대를 잇게 해야 하는 책임을 가졌지만, 
그는 이 관습을 자기의 쾌락을 추구하 는데 이용했고 자식을 낳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율법을 자기 육체를 만족 시키는데 사용할 뿐 관습 안에 규정된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오난도 죽이셨습니다. 
셋째 아들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유다에게 있었던 것은 당연했 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아니 의무를 이행할 생각을 가지지 않고 다말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11). 
 
유다는 상처한 후 친구 히라와 함께 딤나 양털 축제에 참여하게 되었고,  
다말은 거기서 시아버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을 가리고 
신전 창기 와 같이 꾸미고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성관계를 가집니다. 
가나안 사람들 에게는 이런 신전 창기와 매춘을 하는 것이 하나의 제사 의식이었기 때문 에 
유다 자신에게도 이 행위는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었을 것입니다. 
석 달 후에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들은 유다는 화형을 시키라고 명하지만, 
다말이 자신으로 인하여 임신한 것을 알고는 “그녀는 나보다 옳도다”라 고 선언합니다(26). 
이 선언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다는 시아버지로서 자신의 책임 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록 방법은 극단적이었을지라도 다말의 행동은 
당시의 문화에서 규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다말은 죽은 남편을 위하여 가장 가까운 친족들을 통해서 자식을 낳을 권 리가 있었습니다. 

다말이 유다에게 낳은 아들은 쌍둥이였습니다. 
여기서도 동생이 형을 이 겼습니다. 동생 베레스는 형 세라를 터치고 먼저 나왔습니다. 
이 사건은 동생 요셉의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자고 하면서 
애굽으로 팔아 넘 긴 유다를 간접적으로 고발합니다. 
결국 유다의 세 아들, 엘과 세라 그리 고 베레스 중에서 하나님은 
막내 베레스의 계보를 통하여 메시아를 허락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기대와 계획과는 다르다는 것 을 여기서 보여주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언약을 무성의하고 불성실하게 다루는 유다의 타락한 가정에서 
다말이라는 한 여인이 정당한 명분을 위한 싸움을 벌이는 것을 통 하여 
언약의 계보를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처럼 그 언약을 잊어버리고 무너져갈 때 조차도, 
하나님은 비상한(혹은 본문의 이야기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것 을 바로잡으시고 당신의 일을 성취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나안의 풍습에 젖어서 살아가는 타락한 형제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오히려 요셉을 멀리 애굽으로 보내셔서 언약 백성의 정체 성을 갖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38장의 유다와 39장의 요셉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유다는 성적으로 가 나안의 삶 속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지만, 
요셉은 언약 백성의 정체성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인식 앞에서 자신을 지키고 살아갑니다. 
무엇이 진짜 행복이고, 불행인가요?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불행한 것인가? 
요셉을 팔아 넘기고 세월을 보 내며 가나안의 삶에 젖어서 살아가는 유다의 삶이 행복한 것인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속에서 유다를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가시 기 까지 적어도 
38장에서 나타난 유다는 불성실한 언약 백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의 인생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요구됩니다.
내가 지금 인생의 어떤 환경에서든지 주님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로써 우리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보다 더한 분명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 john 18-02-21
      창세기 38장 전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대해 다시 한 번 묵상하게 되는 말씀이다.
      우리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이 연약한 우리를 통해 신실하게 당신의 일들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나로 하여금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동생 요셉을 비웃으며 그를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넘기는데 앞장섰던 유다.
      또한 시아버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아 더 큰 실수를 하게 된 유다.
      이렇게 연약한 그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유다의 가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어찌 보면 어떻게 이런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이어진 가문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뤄 가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가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놀라운 분, 위대한 분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불합리하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어느 누군가의 고백처럼 내가 이해할 수 없기에 그분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다.
      하찮은 내 이성과 지식으로 이해가 된다면, 어찌 그분이 하나님이실까?

      매일매일 묵상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의 생각과 지식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연약하고 부족한 나이지만, 나를 통하여서도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고, 또 일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이 나로 하여금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방치하게 하는 핑계거리가 아니라,
      이렇게 놀랍도록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음에 감사하며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껏 일하시게 내어드리는 결단의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와 같은 자도 사랑하셔서 나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