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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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창세기 43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2-26
  • 572 회
  • 1 건
43장 끝나지 않은 테스트
 
창세기 43장에는 기근은 회복될 기미가 없고 야곱의 아들들이 사 온 양식은 다 떨어졌습니다. 
다시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려 가야합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시므온은 애굽에 감금되어 있고 양식과 시므온 을 데리고 돌아오려면 
막내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요셉을 잃어버린 사건으로 인해 베냐민을 보내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야곱이 고집을 부린다고 해도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야 합니다. 
양식이 떨어지면서 다시 애굽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것은 애굽에 감금되어 있는 형제 시므온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양식이 떨어졌다는 상황이 밀어낸 결정이며 아버지 야곱의 베냐민을 향한 
애정에 대한 야곱 자신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유다의 맹세에 가까운 설득으로 야곱은 베냐민을 내어놓았고, 
야 곱 특유의 선물 전략(?)이 다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서 지금 하나님의 언약 백성 전체를 테스트 하고 계십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무엇인가? 
자기 애정을 쏟을 대상이 그에게는 언제나 필요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에서 아내 라헬로, 라헬에서 요셉으로, 요셉에서 베냐민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모든 애정의 대상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인생에서 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앗아가셨습니 다. 
이것은 야곱의 생애에 하나님께서 다루셔야만 할 문제이기 때문입 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평생 해결하지 못하는 
이런 자기 사랑의 문제와 우상의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반 드시 다루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중요합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서 그 문제를 다루신 적이 있는가? 
혹 지금 다루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

시므온을 애굽에 남겨둔 채 돌아온 형제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가나안에서 함께 밥을 먹는 모든 순간은 좌불안석이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들이 애굽으로 팔아 넘긴 동생 요셉에 대한 생각을 
정말 그들은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편안하게 먹고 발 뻗고 잘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형제들의 그 마음을 이미 건드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형제들을 대신해서 유다는 해결의 열쇠를 가진 아버지 야곱에게 
자신의 맹세로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갈 것을 요청합니다. 
이런 책임감이 과연 언제 그들에게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그들은 이제 상황을 통해서 배워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난 번의 착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두 배의 돈을 가지고 애굽으로 간 형제들은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청지기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선물이었 다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다시 그들의 속에 깊이 잠겨있는 하나님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줍니다. 

형들의 두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요셉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려고 인도받은 그들은 자기들이 형제의 나이 순서대로 앉도록 
배석되었다는 사실에 놀람과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 같은 것 말입니다. 
요셉은 베냐민에게 형제들보다 5배를 주는 편애를 보임으로써 
편애 받 는 형제에 대한 그들의 시기심을 다시 한 번 테스트합니다.
 
첫 애굽 방문 이후 지금까지 베냐민을 위해서 자기의 두 아들의 생명 을 내어놓겠다고 한 르우벤이나 
그를 위해서 자기 자신이 죄를 다 뒤 집어쓰겠다고 맹세한 유다나 
다른 모든 형제들에게 있어서 지난 시간들은 
팔아버린 형제 요셉과 잊혀진 형제 시므온 그리고 열쇠를 쥐고 있는 베냐민에 대해서
깊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한 가지 테스트가 바로 이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부추김을 받는 우리의 시기심 은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누리며 
자족함을 배우기까지 는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육신의 소욕입니다. 
자족함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결코 믿음 안에서 기쁨을 온전하게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성 경은 가르쳐줍니다.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믿음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테스트하심으로써 넘어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기대수준으로 빚어가십니다. 
하나님의 테스트는 너무나 무리하게 조급함으로 우리를 재촉하시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야곱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십 수년이 지나도록 그 형제들을 기다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테스트하고 계신 부분은 무엇일까? 
하님께서는 나를 지금까지 어떤 점에서 기다려주고 계신 것일까?
    • john 18-02-27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창 43:8~8)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유다의 모습을 통해 문득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묵상하게 되었다. 
      자신의 형제 시므온과 베냐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바치는 모습이
      온 세상 죄를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유다지파는 온 세상의 메시야를 배출한 가문이다.
      성경이 주목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이기에,
      오늘 이 사건 역시도 주목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마치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가리키는 메타포와 같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참으로 무궁하며 위대하다.
      성경 곳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예표하시고 그 일을 이루어 가심이 대단히 놀랍고 경이하다.
      ‘하나님의 큰 그림’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너무나 익숙한 말씀이었기에 익숙한 방향으로 묵상하고자 했던 나의 생각을 뛰어넘어,
      갑자기 눈에 들어왔던 유다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다시 한 번 찬양하게 됐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는 가운데, 다른 이들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했던 유다의 모습과 같이
      오늘 나 역시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나를 드려 헌신함으로
      나를 통해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들이 맺혀지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이 시간 간절히 소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