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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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창세기 48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3-03
  • 510 회
  • 1 건
48장 야곱의 성숙한 믿음 

요셉은 애굽에서 얻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연로하여 병든 야곱을 찾아왔습니다(1). 
야곱은 아들 요셉에게 과거 루스(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나타나 
영원히 소유할 땅, 많은 민족을 약 속하신 것을 말해줍니다(3,4).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다고 하신 이 약속은 
사실상 아담에게 주신 하나 님의 축복이었고(1:27), 
아브라함에게도 주신 약속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삶뿐만 아니라 창세기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이루어가고 계심을 보여줍니 다. 

야곱이 요셉에게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지금까지 지탱 하도록 한 힘이 바로 
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하여 미래를 바라보고 살아 가는 것이다. 

임종에 앞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들 로 입적시킵니다(5~6). 
요셉의 두 아들이 야곱의 다른 아들들과 동일한 권리를 가지게 될 것이고, 
요셉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두 몫을 얻게 될 것임을 뜻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한 장면을 
야곱의 생애에 믿음으로 행한 가장 기억할만한 장면으로 소개합니다(히11:21). 

왜 이 장면이 중요할까요? 
야곱의 믿음이 성숙해져서 그가 이제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그 방법에 익숙해져 
거기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축복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장자인 므낫세가 아버지의 오른 손의 축복을 받도록 배치하지만, 
눈이 어두운 야곱은 차자인 에브라임에게 오른 손을 교차시켜 안수하고 
장자 므낫세에게 왼 손을 얹어 축복하였습니다. 
요셉은 이것이 못마땅해서 아버지에게 말을 하지만 
야곱은 이것이 알고 행하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젊은 시절 거짓말로 축복을 가로챈 야곱은 이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방법을 알고 
자기의 손자들을 거짓으로 축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야곱이 손자들을 축복하면서 하는 고백을 보십시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 께서”라고 하는 
이 주목할만한 말은 야곱의 믿음을 잘 보여줍니다 (15~16). 

인생이라는 오랜 기간을 통해서 야곱의 신앙은 성숙해졌고 
여호와를 신뢰 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에 맞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런 교차된 축복의 손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주 우리의 순서를 뒤바꾸시는지, 
우리가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축복하시는지, 
우리가 가장 많은 애정을 쏟는 것들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시는지 모릅니다. 
야곱은 자기가 성공을 추구하던 일은 그리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거의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번창하고 복을 얻는다는 사실을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성숙해진다고 하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의 길과 친숙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며, 
확실한 기 대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방법과 길이 인간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 
우리에게 은혜와 위로로 다가올 때 우리는 그만큼 믿음에서 성숙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셨고,
당신의 믿음을 어떻게 성숙한 자리로 빚어오셨는지를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방법이 익숙해졌습니까? 
그것이 위로가 되는 것을 경험하십니까?
    • john 18-03-06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창 48:19)

      당시의 상식으로나 통념으로나 장자를 위해 더 큰 복을 비는 것이 합당함에도
      이스라엘은 요셉의 둘째아들에게 큰아들보다 더 크게 축복했다.
      그가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그가 사회의 통념을 거스르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시고자 했던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다.
      작은 아들이 큰 아들의 복을 가로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요셉의 작은아들에게 더 큰 축복을 한다.
           
      이를 통해, 형의 복을 가로채던 야곱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스라엘로 변화된 그의 성숙함을 엿볼 수 있다.
      속이고, 빼앗고, 가로채던 삶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되었다.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일하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그는 어느덧 성숙한 신앙인이 되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날로 성숙해야 한다.
      성숙하지 않는다면,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찌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 역시도 나의 삶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 역시도 내 삶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날로 성숙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지. 나를 돌아보며 점검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 질문한다. 나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오늘 나는 성숙해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