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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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창세기 8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1-16
- 504 회
- 3 건
8장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아는가?
홍수 심판의 전환점은 바로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표현입니다(1).
기억하다 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기억하셔서
언약에 따라서 행동하신다는 차원을 보여줍니다(6:18; 창9:15; 출2:24; 6:5).
하나님은 약속에 따라서 행동하심으로써 언약 상대에게
하나님 자신이 신뢰할만한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방주 안에 있는 노아와 가족
그리고 동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 셨습니다.
이 기억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항상 그 기억의 대상을 향해 서 움직이고 계심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의 본질은
그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행동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은
그냥 머리로만 기억하지 않으시고
그 대상을 향해서 끊임없이 행동하시고
그 행동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다는 매우 강력하고 매우 동적인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다 는 것은
하나님께서 홍수가 그치도록 개 입하심으로써
노아에게 주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는 말입니다.
1절에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셨다는 표현에서 바람은
창조 때 수면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셨다고 할 때의
성령님을 가리킵니다(1; 1:2참조).
이제 심판이 마치고 새로운 창조의 활동에서 물이 감하여지는데서
성령님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거의 1년 10일을 노아와 가족들 그리고 동물들은 배에 머물렀습니다.
노아는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여 처음에 까마귀를 내보내고,
비둘기를 세 번이나 내보냅니다.
비둘기가 세 번째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열고 지 면에 물이 걷힌 것을 보았습니다(13).
그것이 1월 1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것은 2월 27일입니다(14).
노아는 비록 물 이 감한 것과 땅이 마른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는 한 발자 국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일년 이상의 방주 생활을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이 얼마나 값진 순종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노아는 이 홍수 심판 이야기에서 철저하게 수동적입니다.
그는 비록 방주 를 지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아 넣으셨으므로,
그는 하 나님께서 그 문을 여셔야 한다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 가족이 무엇을 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하는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특징은
단 순히 일반 은총의 영역에 속한 문명의 발달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있습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지금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20).
이제 하나님은 하나님께 순종했던 한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 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기억하시 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깨닫는 순간,
우리는 기 다릴 수 있고, 인내할 수 있고,
불평을 거두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바로 이렇게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 을 아는 것이고,
이 참된 지식은 성도로 하여금 모든 것을 견디고
순종하 고 이기게 하는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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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18-01-17
- 1
창세기 6, 7장은 망해가는 이야기이고
8, 9장은 흥해가는 이야기이다.
궁금했다.
6, 7장의 망해가던 세상이
8, 9장에서 어떻게 다시 흥하게 되었는가 이다.
창세기 8:1절이 본문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먼저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다.
모든 들짐승과 가축도 기억하셨다.
God remembered Noah
이것이 멸망던 세상이 다시 흥하게 된 핵심요인인 것 같다.
사람의 기억은 지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는 말은
잊었다가 생각해 냈다는 차원이 아님이 분명하다.
기억하다: 자카르(히브리어 동사)
가장 적합한 때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도움을 주시는 자비로운 행동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 고로(창 30:22).
야곱의 아내 라엘에게 자식이 없어
없신여김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니 요셉을 낳게 되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의 지역들을 멸하실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 보내셨다(창19;29)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이 기억하사
애굽 왕 바로의 손아귀에서 건져내시고 해방시키셨다(출2;24)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셔서 바람을 보내셨다.
바람이 불고 땅 속에 있는 물이 막히고
하늘의 창도 닫히자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산꼭대기도 나타나고 육지도 나타나게 되었다.
하나님이 기억하셨다는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특별한 일들이 일어난다.
내 삶속에서도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가득하도록
기도해야 겠다.
아주 망한 사람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흥하게 하시기에 충분하다.
그 하나님이 감사하다.
2.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신 은혜는 얼마나 큰 것인가?
당시 인구가 약 10억명이 되었다 한다.
그 중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사건이 아니다.
노아를 기억하셔서
지구 표면에 가득한 물을 말려 주셨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회장이, 한 나라의 통수권자가 나를 기억해주는 것도 영광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시 113:5~8).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신다는 것은
당신을 굉장이 낮추신 사건이다.
진토에서, 거름 무더기에 빠진 나를 위해
그곳에 내려 오셔서 씻어주시고 일으켜 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롭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 사건이다.
기억하심만이 아니라 나를 자녀 삼아주셨다.
그런 분이 택하신 자를
택하신 공동체를 그냥 두실리 만무하다.
적어도 그 분안에서 애쓰고
노력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그 분은 내가 내면으로 두려워하고 외로워하며
슬퍼하고 좌절하는 생각들을 다 아시고
돌보실 것도 확신한다. -
- 야긴과보아스 18-01-17
-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시기 전
노아는 방주에 여러 날 있었다.
방주에 있었던 시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비오기 전 7일,
비가 내린 40일,
비가 땅에 창일한 150일을 합하면
197일이다.
비가 내린 40일을 150일에 포함해도
최소한 157일 동안 노아는 방주 안에 있었다.
노아가 방주 안에서 있는 동안
하나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침묵하셨다.
이것이 노아에게 얼마나 어려운 시험이었을까?
하나님이 혹시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닌가?
하나님이 혹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들이 노아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홍수경험!
그런 경험이 나에게도 많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노아가 방주 안에 있었던 시간은
하나님이 노아를 가장 많이 사랑하시고
보호해주신 시간이었을 것 같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죽을 때
노아와 그의 가족만 보호해주셨다.
오랜 시간동안 홍수의 위험에서 지켜주셨고
방주 안는 있는 맹수들로부터도 지켜주셨다.
질병의 위험에서도 지켜주셨고
양식이 떨어져 굶어죽을 위험에서도 지켜주셨다.
갖가지 위험에서 다 지켜주셨다.
생각해보니 나도 홍수경험을 통과할때가 있었다.
기도해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는 것 같고
나를 잊어버리시고 버리신 것이 아닌가하는
유혹에 빠질 때도 있었다.
홍수경험은 솔직히 고백하면
극복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다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은 노아를 기억하셨듯이
나도 기억하고 계셨음을 알게 하신다.
욥도 그런 홍수경험을 했던 사람 아닐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어려운 홍수경험을 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그 시간동안
하나님의 심장은 가장 불 붙었을 것 같다.
아들 예수님의 기도를 외면하신 이유가
그를 잊어버리셨기 때문이 아니고
미워하셨기 때문도 아니며
괴롭게 하려하심도 아니었다.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죗값을
속량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변덕스럽고 무자비하셨다면
나에게는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은 숨어 계신 것 같고 안보이는 순간에도
가장 강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살면서 순간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온적이 많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사랑이시며
변하지 않는 분임을 알고 확신하는 것이지 싶다.
본문이 내게 주는 은혜가 있다.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주권은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하나님이 나를 먼저 기억해주셨기에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 맞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시면 내 인생은 달라진다.
지금 이곳에서 예배하고 있는 것,
배우고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홍수경험은
나에게는 신앙경험이다. -
- john 18-01-17
- 창세기 8장: 예배자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창 8:20)
방주 안에서만 1년도 넘게 지냈던 노아와 가족들이 배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었다.
심판과 사망의 권세에서 건짐 받은 그들이 가장 먼저 하나님께 예배했음을 볼 때,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은 내가 할 일 역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임을 상기하게 된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정체성.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지음 받았고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구원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셔서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예배 받기를 원하신다.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일, 매순간 내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삶의 예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높임을 받으소서. 내가 밟는 땅 주님의 땅이니 …
찬양하며 주님을 예배할 때, 하늘 가득한 주의 영광보리라
나를 통하여, 나의 입술을 인하여 주의 이름 높임을 받으소서.”
노래했던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내가 서 있는 그 곳에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 구원받은 내가 마땅히 올려드릴 예배인줄 믿는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내가 하는 일을 통하여, 내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최고로 높임 받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높이 드러날 수 있도록
오늘도 삶의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