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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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19 창세기10-11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1-19
  • 523 회
  • 1 건
10~11장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낮추시는 하나님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온 땅에 흩어지게 된 열국의 목록이 나오 고, 
11장은 바벨탑 건설을 통해 인류가 하나되어 하나님을 반역하는 시도 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내용입니다. 
심판의 결과는 언어를 나누 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서 퍼지게 된 자손의 계보에는 모두 70개의 이름 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부족, 성읍, 성읍에 거주하는 사람들, 국가들 그리 고 다양한 개인의 이름들입니다. 
이 목록은 이 인류학적(백성들), 언어학적(부족들), 정치적(국가들) 
그리고 지리적인(성읍들) 기준으로 분류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목록은 단순히 조상들의 이름을 제공하는데 관심을 갖지 않고 
이 아들들이 무엇이 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 중심에는 가나안 땅을 차지한 가나안 족속과 함의 계보인 
니므롯에서 유래한 동방의 세력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 본문은 지상 모든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심을 보여줍니 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 아래서 번성해갑니다. 
그러나 니므롯이 세 운 바벨론같이 강한 민족에게서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은 오직 민족들을 다스리시고 자신의 새로운 민족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부터 나뉘어져서 국가가 형성되었을까요?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아람의 아들 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 았으며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창 10:22~25). 

벨렉은 셈의 4대손입니다. 
창세기 11장에서 계산해보면 벨렉은 홍수가 난지 107년 후에 태어났습니다. 
벨렉은 그 이름의 의미가 ‘나누 임’(division)이고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었다고 했으니까 
벨렉이 태어 나고 바벨탑 사건이 일어났고 
언어가 혼잡해지자 서로 나뉘게 된 것입니 다. 
그러므로 홍수 이후 약 100년 동안은 노아의 세 아들과 그 후손들이 같이 살다가 
바벨탑 사건이 일어나면서 언어가 달라지고 
그때부터 흩어져 서 국가가 형성된 것입니다. 

오늘날 민족의 경계로 현존하는 언어들의 숫자는 
사실상 죄에 대한 기념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벨이라는 이름은 10:9~10절에서 니므롯이 
시날 땅에 세운 바벨론에서 온 것입니다. 
이 탑은 바벨론 문화의 상징입니다. 
고대 바벨론에는 지구라 트라고 불리우는 계단식 탑이 존재했습니다. 
느부갓네살 때 ‘머리를 드 는 집’이라 불리운 건축물은 마르둑 신의 성소였는데, 
70층의 탑 꼭대기 에는 신전이 세워졌습니다. 

이 건축물의 규모는 밑면의 가로 세로 그리고 높이가 각각90m 였습니다. 
이 건축물이 고대의 것을 재건한 것이라는 점 을 볼 때, 
바벨탑은 그보다 더 규모가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벨탑을 쌓아올린 사람들의 리더는 니므롯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바벨론이란 나라의 정체는 교만하여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 력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런 존재를 심판하십니다.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많은 선지자 들이 예언했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상징으로 등장하여 
일시간에 멸망하는 것이 사도 요한에 의해서 선포되었습니다(계18). 
이 심판이 이전의 다른 심판들과 다른 점은 
여기에는 그 어떤 소망도, 약 속도, 피할 방법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죄인들을 위한 가죽옷도, 
도망자를 위한 보호의 표시도, 
하늘의 무지개도 없습니다. 

아브라함 이전의 원시역사는 이 심판으로 인한 흩어짐과 
철저한 혼란으로 끝을 맺습니다. 
축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이제 새로운 하나님 의 역사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엇을 배웠을까요? 
바벨탑 사건과 언어의 혼잡 심판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였습니 다. 
그 경고는 불순종하는 민족은 누구든지 솜씨와 능력에 상관없이 
부끄 러움을 당하고 낮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배워야 했 습니다. 
순종을 거부하는 민족은 흩어짐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이스라엘은 결국 먼 미래에 불순종으로 흩어짐을 당하게 됩니다.

11장의 마지막 부분(10~26)에는 다시 셈의 자손의 계보가 나옵니다. 
이 족보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상을 추적하기 위한 것입니 다. 
아브라함은 이 족보에서 노아와 연결이 됩니다. 
이 족보는 사실상 노아에 서 아담까지의 연결을 보여주는 
5장의 족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결국 성경의 기자가 보여주려는 것은 
아브라함이 첫 사람 아담의 실패를 회복 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관련을 지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12:1~3) 
흩어진 민족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한 민족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신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이 족보는 독자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준비하게 합니다. 

이 족보가 5장의 족보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5장의 족보에는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죽음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죽었고’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여기서는 죽음에서 벗 어나 약속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단어가 생략되어 있습 니다. 
비록 인간의 수명은 줄어들었지만, 생명과 확장을 강조하는 것입니 다. 

이제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인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구원의 역사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홍수 심판 후, 노아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새로운 역사도 
결국은 죄로 얼 룩질 뿐 아니라 죄가 그의 모든 자손들에게로 파급되고 확산되는 역사였 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뻔합니다. 

노아의 포도주 사건 이후, 역사는 계속해서 하강하고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아서 하늘에까지 이르러보려고 시도하지만, 
그 놀라운 기념비 적인 시도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셔야만 
보실 수 있을 만큼 낮고 별볼 일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모든 것을 보장하는 열쇠라는 사실을 
이 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소망은 니므롯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나, 
바벨론 같은 거대 제국으로부터 도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john 18-01-19
      창세기 10장: 내게 주신 것이 있다면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 10:8~10)

      노아 가문의 족보가 기록되는 가운데
      오늘 말씀은 ‘니므롯’이라는 사람을 주목하고 있다.
      니므롯은 함의 자손으로, 용사라고 했다.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그는 힘이 세고 용맹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 보니
      그의 나라가 시날 땅의 바벨에서 시작되었다고 나와 있다.
      바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벨탑’과 관련이 있는 지역인데,
      인간들이 우리의 이름을 내자고 탑을 쌓았던 곳이 바로 이 바벨이다.

      용사였던 니므롯에 대한 기사를 읽어 가며
      그가 세운 바벨이라는 나라,
      또 그 바벨에서 시작된 바벨탑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다.

      인간의 힘은 결국 이렇게 죄로 귀결된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세운 이유는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함’(창11:4)이었다고 했다.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자 불신앙인 것이다.
      힘은 가진 니므롯의 후예들은 결국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하나님에게까지 높아지려고 했다.

      죄악 된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이렇게 내가 가진 것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나를 높이려한다.
      나의 모습만 보아도
      나는 언제나 내가 가진 건강, 내가 가진 시간, 내가 가진 물질을 가지고
      내 자아를 추구하면서, 오로지 내 뜻대로 살아갈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끝은 항상 악할 뿐이다.

      힘을 가졌던 니므롯과 그의 후예들이
      자신들의 힘을 가지고 바벨탑을 쌓았듯이,
      오늘 나 역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을 가지고
      내 안에 또 다른 바벨탑을 쌓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 있다면,
      그것이 힘이든, 젊은이든, 시간이든, 물질이든
      오직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자가 되기를 사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