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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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장_눈에 보이는 것 VS 믿음

  • 느헤미야강
  • 2018-01-22
  • 530 회
  • 3 건
창세기 13장. 눈에 보이는 것 VS 믿음
 
본문은 아브라함이 다시 애굽에서 벧엘로 올라온 후의 이야기입니다. 
벧 엘은 아브라함이 전에 하나님께 단을 쌓은 곳입니다(12:8). 
아브라함과 롯은 이미 소유가 많은 거부가 되었습니다(2). 
이것은 그들이 더 이상 함 께 거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6). 

조금 다른 이유는 그 땅이 이미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에게 점유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롯은 그들을 피하여 목초지를 정해야 했기에 매우 제한되었을 것입니다 (7). 
이 사건이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관점에서 롯의 관점에서 각각 가르 치는 믿음에 대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는 것으로 행하는 자와 믿음으로 행하는 자의 차이입니다.

** 하나님나라의 두 관점: 두 종류의 사람 - 하나님의 사람, 세상의 사람
 
롯은 보이는 것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보이는 것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분쟁을 해결 하기 위해서 
롯에게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9). 
롯은 자 기 눈에 보기 좋은 요단 들을 바라보고 그곳을 선택하였습니다(10). 
그곳 은 마치 에덴 동산 같이 좋고, 애굽 땅처럼 비옥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 다. 
애굽 땅에 비유한 것은 
지금 광야에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피부에 와닿는 비유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의 선택은 ‘여호와께 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라는 말로 
상당히 불길한 복선을 담고 있습니다. 
롯의 선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의 눈이 그렇게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보이는 것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결국 보이는 것이 잘못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관대함에 대해서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 나님의 약속을 가진 사람은 
욕심스럽게 자기 미래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 서 싸우고 발버둥칠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애굽에서의 자 신의 실수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다툼을 피하고 땅을 롯에게 양보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를 성경은 강조합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아브람에게 이르시되”(14). 
하나님께서 바로 아브라함에게 오셔서 그에게 눈에 보이 는 땅을 
다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실 것이며, 
자손을 땅의 티끌같게 하시겠 다고 
다시 한 번 약속의 확증을 주셨습니다(14~17). 
믿음을 사용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분명한 확신을 주시고 인도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아가는 것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안전하고 복된 삶임을 창세기 13장은 보여줍니다. 
        
핵심 포인트!!!        
1. 아브람이 눈에 보이는 롯과 같은 선택이 아니라 
믿음의 선택 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바로와 사래, 불가항력적인 사건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사건을 통해서...
 
또한 본문에서 간과하기 쉬운 한 가지는 아브라함의 이런 순종은 
바로 예배하는 삶에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벧엘로 돌아와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4). 
그는 단순히 그 전의 땅으로 돌아온 것 만이 아니라 예배 가운데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마지막도 아브라함이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수풀로 처소를 옮겨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은 것을 보여줍니다(18).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으로 나타납니 다. 
아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배한 사람이었듯이, 
아브라함의 예배의 삶도 그의 온전한 믿음의 삶, 
믿음을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되었습 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은 곧 순종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눈에 보 이는 것을 믿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이 자신을 잘 못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러나 믿음을 따라서 사 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채우시고 
장래의 은혜를 부어주심을 경험하며 가장 안전한 길을 걷는 것이 됩니다.  
    • 다니엘 18-01-23
      같은 길, 다른 길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이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창13;1)
      그가 네게브에셔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창13;3)

      아브람은 가나안땅에 도착 한 뒤 벧엘와 아이사이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점점 남방으로 옮기고 기근이 있자 애굽으로 내려갔다.
      바로의 아내로 자신의 아내 사라를 내주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위치가 회복된 후 다시 내려 갔던 그 길을 거슬러
      벧엘과 아이 사이 애굽에 내려가지 전에 제사드리던 곳으로 올라왔다.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가던 그 길을 걸었던 아브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약속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기근 때문에 내려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을 것 같다.
      반면에 애굽에서의 소동이후 다시 올라오는 길은 어땠을까?
      같은 길이었지만 내려가고 올라오는 길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고 다시 올라가는 그 길은
      분명 예전의 그 길과는 다뭇 달랐을 것이다.

      걱정과 근심 가득한 모습으로 교회를 향해 나선 발걸음이었는데
      예배를 통해 모든 문제 해결받고 돌아가는 그 길은 분명 다를 수 밖에.

      내가 은혜없이 살아가는 하루와 그 길
      성령충만함으로 꽉찬 삶이 걸어가는 길과 그 하루는. 같을 수 없다.

      오늘 내가 걷는 길과 하루의 시간.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일의 결과때문일수도 있겠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통째로 경험하게 되는 때가 아닐까?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삶을 채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 야긴과보아스 18-01-23
      두 개의 시선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13;11-12)

      아브람이 가나안땅에 기근이 있자 애굽으로 내려갔다.
      약속의 땅에도 기근은 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영적 기근은 있다.

      아브람은 애굽에 내려가서 큰 교훈을 얻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아브람은 죽고 그의 아내 사래는 바로 왕의 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은
      그를 건져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다.
      신앙까지 회복시켜 주셨다.

      그 근거가 조카 롯과의 헤어짐의 장면에서 드러난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큰 위기를 겪었지만 수지도 맞았다.
      바로 왕이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취하려 할때에 육축과 노비를 주었다.
      그가 사래를 돌려주었을 때 그 예물을 돌려 받지 않아 아브람이 부자가 되었다.
      조카 롯도 부자가 되었다.

      많은 부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죄가 아니나 부요가 주는 위험성을 엿보게 된다.

      아브람은 이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쥐고 해결하려고 나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상대방을 굴복시켜 강압적으로 연합을 이루거나,
       평화롭게 나눔의 길을 가는 것이다.

       아브람은 자신이 양보하여 룻에게 선택권을 먼저 주었다.
      롯은 눈에 보기에 좋은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다.
      아브람은 가나안땅에 거주했다.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아브람과 롯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똑같이 갈대아 우르에서 나왔고 하란에 머물렀으며 애굽에서의 경험이 있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의 하나님 경험을 통해 보다 더 신뢰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반면에 롯은 같은 현장에 있었으나
      그가 본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아니라 세상적인 가치관만 보았다.
      물질만 보았다.

      똑같이 은혜의 자리에 있다고 해서 다 같은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
      어쩌면 아브람은 가나안땅에 머물러 있어야 했음에도
      기근이라는 환경으로 하여금 애굽땅에 머물게 된 것,
      아내를 누이 동생이라고 속여 하나님의 역사를 어그러지게 할 수 있었더 상황.
      아내를 다시 찾을 수 없는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가슴속 깊이 새겼으리라.
      그런 하나님이면
      어떤 땅을 선택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았던 것 아닐까?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리라면 어디든지 좋다고 여긴 것 아닐까?

      성경은 롯이 떠난 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북남동서쪽을 바라보며 보이는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아브람의 시선은 물질이 늘어나도 물질에 있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롯은 물질로 시선이 돌아가 있었다.

      나의 시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아브람의 시선
      롯의 시선
    • john 18-01-24
      창세기 13장: 약속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14~5)

      우리의 삶은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소한 약속부터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까지,
      우리는 삶을 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약속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은 무한하지도 않고 완전하지도 않다.
      누군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그 약속이 깨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약속의 내용이 불합리해서 바뀌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하신 약속은 영원하고 완전한 약속이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절)
      영원히 이를 약속, 결코 깨어지거나 바뀌지 않을 완전한 약속.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하신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뿐만 아니라 오늘 나와도 영원히 이를 약속을 주셨다.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 영원한 은혜의 약속.
      나는 이 약속을 의지하여 오늘 이 하루도 살아간다.

      때때로 나의 삶 가운데 어려움과 유혹, 시험이 닥쳐 올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영원한 약속을 의지하며
      늘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오늘도 나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나에게 은혜주시기를 기뻐하시며,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이시간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