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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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창세기 14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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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하나님의 축복을 손상시키지 말고 살라
 
창세기 14장 본문은 아브라함이 동방의 동맹군들과 
요단의 동맹군들의 전쟁에 연루되어 전쟁을 한 이야기이며,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실현되고, 
아브라함 자신에게 신실하고 선하신 하나님께 대한 
더 깊은 확신을 주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요단의 성읍국가들은 동방의 그돌라오멜 왕을 12년 동안 섬겨 공물을 바 치다가 
13년째에는 바치지 않고 배신을 했습니다. 
이듬해 그돌라오멜이 자기의 동맹 왕들과 함께 요단을 침공하여 초토화합니다. 
이 때 소돔에 정착하여 살던 롯과 그 가족이 다 포로로 사로잡혀가게 되었고, 
이 소식 을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자기와 동맹을 했던 아모리 사람들과 함께 
자기 의 318명 군인을 이끌고 야습하여 동방 왕들을 치고 
롯을 비롯하여 사로 잡힌 자들을 구하여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기초 줄거리입니다.

이 국제적 전쟁에서의 승리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고, 
그가 국제 사회에서 하나의 강력한 족장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셨고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 님께서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실 것을 
더욱 분명하게 확신하게 되었을 것 입니다. 
 
14장은 다시 한 번 롯의 불신앙이 롯을 어디로 인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는 눈에 보기 좋은 쪽을 선택했던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지요.  
롯이 처음에 소돔 근처에 장막을 쳤다가, 
곧 그 안에서 거하기 위해서 이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당시 아모리 족속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했다고 했는데, 
여기 ‘거했다’는 단어는 임시적인 거함을 의미한다면(13), 
롯이 소돔에 ‘거했다’는 단어는 영구적인 거함을 의미하 는 다른 단어입니다(12). 

아브라함은 아마도 임시로 거주하기 위해서라도 
아모리 족속과 동맹을 맺 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아직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치 않았던 때였습니다(창15:16). 

아브라함은 이들 동맹군과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승리자로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맞은 두 사람의 왕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멜기세댁입니다. 
그는 살렘(예루살렘)의 왕이었고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조상에 대한 어 떤 소개도 없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성경 독자들의 생각이 온통 세상에 영적 소망을 가져다 주게 될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인물을 향하고 있는 데, 
잘 알려지지 않은 가나안 골짜기에서 
아브라함보다 
더 하나님과 가까 운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멜기세덱의 보좌에 앉은 이스라엘 최초의 왕인 다윗은 자신의 위대한 
후 손이 멜기세댁의 반열을 따라 제사장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시 110:4). 
멜기세댁은 떡과 포도주로 전쟁에 지친 아브라함을 영접했고, 
하나님 앞 에 아브라함을 축복했고, 하나님을 송축하였습니다. 
멜기세덱의 축복은 아 브라함에게 얼마나 큰 믿음의 확신을 주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모든 대적을 꺾으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보 다 높은 자로부터 받은 축복을 인정하고 
그에게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승 리와 축복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표시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대적을 꺽으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 사건이 얼마나 의미있었을까요? 
광야에서 많은 전쟁을 치루는 가운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수많은 가나안 족속들과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이후의 역사에서도 주변의 모든 강대국들과의 싸움에서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주 신 약속을 지키시고, 멜기세덱을 통해서 주신 
축복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브라함은 맞았던 두번째 인물은 소돔 왕입니다. 
그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돌려주고 그 대신 모든 전리품은 가지라고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이 제안은 어쩌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고 선물이 라고 생각하게 만들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아 브라함을 부자로 만드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 브라함은 순간 이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멜기세덱이 말한 것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소돔 왕의 제안을 일언제하에 거절하게 만드는 분별력을 더해 주었을 것입니다. 
전리품을 통한 축복은 멜기세덱이 말한 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분명히 했기에 
소돔왕의 제안은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은 모두 받지만, 
소돔 왕으로부터는 실오라기 하나도 취하지 않기 로 결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이런 식의 제안들이 가지는 매력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를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성공, 즐거움, 위로 그리고 번영을 
하나님께 의지하 도록 자신의 삶을 규정지어야 하지만, 
그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어 떤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어떤 것이 세상에서 온 것인지 구별할 수 있게 해줄 그런 믿음이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언제 복이 하나님께로부 터 오는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복을 주거나 복 을 주겠다고 제안하는 사람의 
동기와 본성을 분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세상에 승리하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싸우도록 
부름을 받았 고 승리를 약속받은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깨달았던것처 럼 말입니다. 

그러나 늘 성도를 넘어뜨리는 것은 승리의 이후 
혹은 승리의 절정에 있을 때 찾아옵니다. 
세상적 이익과 하나님의 축복을 구별하지 못하게 유혹합 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그 성공의 절정에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찬탈할 위험을 의식해야 합니다. 
승리의 근원이 하나님이었음을 알고 세상에서 오는 유사품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 john 18-01-24
      창세기 14장: 십분의 일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 14:20)

      네가 보는 땅을 주겠노라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그의 대적들로부터 승리하게 하신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깨닫게 된다.

      본문에 나오는 이 전투를 통해서
      아브람도 능력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나타나신 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본문 20절에는 그가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아브람의 신앙고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신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그 약속을 이뤄 가심을 목도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신실하심을 몸소 깨닫게 되었고,
      또한 그로 인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했던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또한 십분의 일의 신앙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는데,
      십분의 일을 드리는 신앙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할 때에 가능하다.
      내 것 중에서 10%를 내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 고백으로 드리는 것이다.

      나에게 주신 모든 시간, 건강, 물질, 재능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십분의 일을 드릴 수 있다.

      하나님은 가난하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무능력하지도 않으시다.
      우리의 10%를 욕심내시는 분이 결코 아니다.
      그저 우리의 전심을, 우리의 고백을 원하시는 분이다.

      오늘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했던
      아브람의 모습과 같이,
      나의 삶 또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음을 고백하기 원한다.

      하루의 십분의 일을 드려 말씀을 묵상하고,
      물질의 십분의 일을 드려 예물을 드리고,
      건강과 재능의 십분의 일을 드려 사명을 감당하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내게 있는 것임을 고백하면서
      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고백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