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25 창세기 16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1-25
  • 538 회
  • 3 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낳게 될 자식을 약속하셨지만(15:4) 
그 약속의 가능성이 시간이 흐를수록 희박해지자, 
사라는 하나님의 계 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려고 하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처음 가나안 땅에 왔을 때 기근이 들어서 애굽으로 가야했던 것과 같 이, 
하나님은 자식을 약속하셨지만 자식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 갔을 때 많은 소유를 얻었고 
그 중에는 바로에게서 얻 은 노비도 있었습니다. 
하갈은 그때 얻은 종이었을 것으로 여깁니다. 

사라가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얻고자 한 것은 
고대 근동의 법률과 상 식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계산과 노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가르 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그 주권에 대한 불신앙일 뿐임을 보여줍니다. 
그 불신앙의 모습은 사라가 자신이 아들을 얻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는데서 볼 수 있습니다(2). 

이야기에서 에덴 동산 선악과 앞에 선 아담과 같이 
아브라함은 철저하 게 수동적입니다. 
사라의 계획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아내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했고 하갈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임신한 하갈은 사라를 멸시했습니다(4). 
그러자 사라는 다시 그 탓을 남편에게 돌립니 다(5). 
아브라함은 역시 수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사라는 남편의 허락을 받아 하갈을 학대하자(6), 하갈은 도망합니다. 

믿음의 방법을 포기하고 인간의 계산을 도입하면 그 사람, 가정, 교회는 
오래도록 곤란하게 만드는 원인과 결과라는 사슬에 매여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인내의 기다림이 인간의 계산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면, 
본능적인 충동들과 올바른 행동들이 서로 얽히게 되지요. 
이 과정이 일단 진행되기 시작하면 갈등으로 치닫게 되기에 
그 안에 들어있는 사 람들이 그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가 바로 
이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입니다. 


이야기의 뒷부분은 하갈과 그녀를 만나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 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샘물 곁에서 하갈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낳게 될 아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이란 이름을 주셨는 데 
이는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이름은 고대 세계에 서 매우 인기있는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을 고통을 아셨고 들 으셨습니다. 
그래서 하갈은 하나님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불 렀습니다(13). 
그리고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나를 감찰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우물’이란 뜻이지요. 

하갈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아브라함에게로 다시 돌아가는데, 
돌아 가서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다 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중에 하갈이 아이를 낳았을 때, 
이스마엘이란 이름을 지어준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15). 

하나님께서 사라의 학대를 못이겨 도망한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다는 것은
이스마엘을 보고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기억 해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을 감찰하셨다.’ 
이름을 부를때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함으로 
그들에게 이 것은 자신들의 불신앙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고통이고 부끄러움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배워야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하갈의 고통을 들으신 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을 처지와 형편을 아셨던 것처럼, 
들 자신의 처지도 아신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라와 아브라함은 한나가 그랬듯이, 
그리고 그의 아들인 이삭이 후일 아내 리브가가 아들을 낳지 못할 때 기도했듯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어야 했 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부르짖는 대신 인간의 계산을 취했던것입니다.

성도들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인간적인 계산 보다는 
감찰하시는 하나 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시고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오래 참지 못하고 자기 걱정에 빠져서 
자기를 도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자 
모든 것을 보고 들으시는 분께 부르짖는 대신 
경솔한 계획과 계산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 것을 
본문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하나님은 인내의 소망과 약속들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의 뜨거운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결국, 불신의 열매로 인해 하나님은 13년 동안 
아브람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6:16절과 17;1절 사이가 13년이라는 
긴 시간의 공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 다니엘 18-01-26
      창세기 15장에 아브람은 믿음의 사람으로 나온다.
      하지만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람은 불신자와 같은 모습이다.
      그 이유는 약속에 대한 기다림 때문이다.

      약속과 성취사이의 기다림은 결코 쉽지 않다.
      모래시계.
      모래가 더디게 내려간다고 해서
      흔든다고 빨리 내려가지 않는다.
      시간이 차야 된다.

      아브람이 약속이 더디다고
      인간적인 계산으로 나아간 것은
      모래시계를 흔들어서
      빨리 가게 해보려는 유혹에 다름아니지 싶다.

      아브람의 마음도 이해된다.
      75세에 약속이 85세가 되도록
      10년이 지났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을거다.
      내 삶속에서도
      때로 하나님의 약속, 섭리가 모순된 것처럼 보일때가 있다.
      그럴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는
      모래시계가 다 내려온 후에야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렇게 생각하고 성경이야기를 생각하니 맞다.

      요셉의 꿈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그에게 절하는 거였다.
      높은 사람이 될것이라는 약속이다.
      하지만 요셉의 인생은 정 반대였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17세에 구덩이에 빠졌고,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다.
      유혹을 뿌리친 댓가로 감옥에도 갔다.
      17살부터 28살까지 노예로 있다가
      30살까지 감옥에 있었던 사람이
      어떻게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약속은 어디로 가고
      고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날까?

      하지만 요셉이 30살이 되자
      하나님의 섭리의 모래시계는 다 내려왔고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약속이 실현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섭리의 모래시계가 다 내려와야 됨을 보여준다.

      다윗도 기름부음 받은 후 왕 되기까지 그랬다.

      어제는 믿음의 가족의 좋은 소식을 들었다.
      생일에 들린 가장 큰 축복의 선물이었다.
      참 오래기다렸고, 힘들게 했으며
      별의 별 생각을 다 하게 만들기도 했으나
      시간이 되자 이루어졌다.
       
      올 한 해 동안도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는 변함없음을 기대하고
      돋는 해 아침 빛 같이,
      움이 돋는 새풀같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속에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믿음의 식구들안에서
      넉넉하게 일어날 것은 확신하게 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대신에 인간적 계산의 유혹은
      내 삶속에서 내내 조심해야 할 거리로 다가온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다고 서두르지 말 것.
      의심하게 될 때 인내는 사라지고
      사단에게 틈을 줄 수 있겠다 싶다.
      이 정도 기다렸으면 됐지 또 기다려야 돼? 라는.

      하나님의 방법이 더디다고 생각될때에
      내 생각을 합리화시켜 하나님 섭리도 바꾸지 않기.

      사래 몸에서만이 아니라 하갈에게서 난 자식도
      내 자식이니까?
      사래를 하갈로 바꾸며 변명하지 않기.

      오늘날 내 삶의 주변에도 많은 유혹이 있다
      물질과 관련된 축복
      영적인 유혹이 있다.
      소위 신사도 운동이라는 것.
      이 시대에 새로운 사도로 자신들을 계시하셨단다.

      정상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응답 오랫동안 기다리며 인내한다.
      그런데 자신이 사도라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답답함을 잠깐 해결해줄지 몰라도
      점쟁이가 점을 치듯 하는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님을 본문이 보여준다.

      답답해도 하나님의 예언과 섭리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때가 되어 내려가면
      다 이루어진다.
      아브람과 하나님, 언약과 계산.
      참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다.
    • 야긴과보아스 18-01-26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2절)


      아브람이 사래를 통해 온 유혹에 넘어갔다.
      믿음의 사람 아브람이 어떻게 넘어갔을까?
       
      인간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유혹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만일 종들이 와서 하갈이 애굽 여인이기는 하지만
      예쁘고 육신도 건강하니 취하여 아들을 낳으십시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하셔서
      10년을 기다렸지만 아직 한 명도 없지 않습니까?

      이 말에 과연 아브람이 받아들였을까?
      헛소리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거나 곤장을 댔을거다.
      문제는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유혹이 왔다.

      부부는 서로 돕는 베필이다.
      예스와 노우를 할 줄 아는 관계이어야 한다.
      서로 마주보는 관계이다.
      그래야 바른 일에 대해서는 예스로 그른 일에 대해서는 노우라 할 수 있다.
      바른일에서 노우로, 그른 일에 대해 예스라 한다고 건강한 부부는 결코 아니다.

      남편이 기도하지 않으면 아내가 기도하자고 하고
      아내가 성경을 읽지 않으면 남편이 성경 읽자라고
      서로의 믿음을 격려해야 한다.

      영적인 이유가 있지싶다.
      아브람이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다.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약화된다.
      믿음이 약화되면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생각해보니 한 동안 기도하지 않아도 금방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여기에 유혹이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약해지고
      그러다 결정적인때 유혹이 오게 되면 넘어진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유혹에 넘어간 후 외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잉태했다.

      단기적으로 쉽고 빠르게 돈을 버는 방법은 도둑질하거나 사기를 치는 거다.
      높은 위치에 있어 뇌물을 받아서 부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인 성공은 될 수 없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려고 했을대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었다.
      거역하는 길이 순탄해 보이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풍랑이었다.

      아찔하다.
      그동안 내 삶속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불순종도 때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 했을 때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
      엄청난 물이 솟아 나와 회중과 짐승이 마셨다.(민20장)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지만 물은 나왔다.

      하나님은 나의 불순종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형벌을 부과하지는 않으신다.
      하지만 징계를 내리신다.

      생각해보니 아브람이 받은 징계는 가정불화였다.
      하갈이 사래를 멸시했다.
      하갈은 자기가 누구의 은혜로 잉태하게 되었는가를 잊어버렸다.

      나 역시 하갈같은 본성이 있다.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닌데 그런게 참 많다.

      사래는 아브람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하갈이 나를 멸시하니 당신이 판단하라.
      자신이 제안해 놓고 바가지를 긁고 책임을 전가했다..

      아브람은 책임을 회피했다.
      전적 수동적인 인생을 보여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하갈의 자녀인 이스마엘의 후손들과 사래가 낳은 이삭의 후손들은
      대대로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다.
      아브람이 유혹에 넘어간 결과이다.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 받는 삶이 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 john 18-01-27
      창세기 16장: 하나님의 방법, 인간의 방법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 16:2)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아브람은 그 약속을 믿었다.

      시간은 흐르고,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는 계속해서 나이 들고,
      그럼에도 도무지 아들이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래가 머리를 썼다.
      바로 자신의 여종으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아브람도
      어찌된 일인지 이러한 사래의 의견에 동의했다.
      전적으로 인간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사래를 통해 아들을 주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사래의 태를 열어주셔서 그로 말미암아 아들을 낳게 하시는 것.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인간의 방법은 언제나 악한 열매를 맺는다.
      사래의 방법으로 인해
      하갈은 주인을 깔보게 되었으며,
      사래는 여종을 학대 했다.
      또한 하갈이 낳은 아들은 형제와 대항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인간의 방법은 이렇게 늘 한계가 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선한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통해
      경수가 끊어진 사래에게 아들이 생겼고,
      아브람과 사래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으며,
      그의 씨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늘 옳다.
      우리의 소망과 생각을 뛰어넘는다.

      따라서 내가 구해야 할 것은 인간의 방법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방법이다.
      나는 하나님의 방법을 구하는 자인가,
      나의 방법대로 사는 자인가?

      내가 일하면 그냥 내가 일하는 것이 되지만,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지혜로운 모습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