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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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에게 속한 기쁨 - 아6;11-7;13

  • 다니엘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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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7장을 읽으면서 ‘네’라는 표현에 아내를 넣어 읽어보니 
참 어색함을 느껴진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신체의 각 부위를 언급하며 표현했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깊은 인격적인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 진실한 마음과 한결같은 사랑, 
술람미 여인과 깊은 만남이 있었기에 
술람미 여인의 모든 신체가 다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사랑을 
솔로몬과 술람이 여인의 사랑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나 
부부간에 있어야 할 사랑의 모습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한 사랑의 표현의 극치는 6절같다.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
 ‘사랑아'라는 표현이 살갑고 정스럽다. 

솔로몬에 대한 술람비의 고백의 절정은 10절같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다고 고백한다.
 ‘속하였다’는 것은 다른것에 대한 자유를 잃었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 속함은 내가 사랑하는 이에 대한 것 외에 
다른 모든 것에서는 막혀있음이다.

결혼을 하고서도 아이가 없는 가정들은 자녀를 원한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아이없이 부부만 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자유롭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는 달콤한 잠을 포기해야 한다. 
부모의 모든 삶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내 인생이 사라지고 오직 아이에게 귀속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행복은 거기에 있다. 
자유가 없는 것 같은곳에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것이 힘들다고 여길때가 있다. 
그렇다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오랫동안 계속된다면 행복은 없다. 
간섭함, 잔소리 없는 곳이 진정한 자유의 곳이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딘가에 귀속되어 열심히 일하는데에 있다.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같으나 
실은 그 속함 때문에 누리를 기쁨과 평안이 있다.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속한바 되었다고 고백하는 이 선언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내가 반응해야 되는 고백이기도 하다.
나는 하나님께 속해있다. 사랑아, 속한자. 두 고백이 
나와 하나님사이에 날마다 인격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고 살게 되기를 소망한다.

주님은 하늘보좌에 앉을 자유를 포기하시고 친히 이곳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자신을 가두셨다. 
그 결과가 나에게 참 생명이 주어졌고, 회복이 일어났다.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나 역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죄로 물든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사명자가 될 것이다.

내 삶속에서 가정에서 부부가 
사랑아, 속하였나니 
이런 아름답고 행복한 관계로 성장하기를 노력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도 이런 고백이 넘쳐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