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월11일 - 창세기4장 통독_ 죄는 확산된다

  • 느헤미야강
  • 2018-01-11
  • 551 회
  • 2 건
4장 죄는 확산된다.

이미 인간 사회에 들어온 죄가 어떻게 급속하게 퍼져나가는지를 4장의 사건이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죄의 확산입니다. 
특별히 가인이라는 인류의 첫 아들과 그의 후손을 통하여 죄는 확산됩니다.

가인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의 불신앙은 무엇보다도 더 신실한 사람인 아벨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에 대한 질투와 분노로 나타납니다. 
아벨의 제물에 대한 성경의 묘사,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다는 것은 
아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공을 들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히브리식 표현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최소한의 의무만을 수행했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아벨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고 한 지적의 의미중 하나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11:4).” 

그러나 전통적으로 교회가 가르치고 배웠던 것처럼, 
아벨의 제사가 피있는 제사였던 반면, 
가인의 제사가 피없는 제사였다는 점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이미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입히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피의 제사를 가르쳐주셨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사(예배)와 관련하여 본문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물을 동일하게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4~5절에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자는 제물과 함께 그 자신도 열납되거나 
아니면 제물과 함께 그 자신도 열납되지 못합니다.

제사드리는 자와 제물은 구분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신 제물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제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열납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이 드리는 모든 예배자는 열납되지 못합니다.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제물과 함께 열납되지 못한 가인의 삶은 저주의 길로 향하고 말았습니다. 

예배는 중요합니다. 생명과 죽음처럼 중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가인의 불신앙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6~8). 
결국 저질러진 최초의 형제 살인과 이후에 가인의 계보에서 나타나는 죄의 확산은 무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인과 가인의 후손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가인을 죽음의 두려움과 죽음으로부터 보호하셨고(14~15), 
가인과 그 후손이 문명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성을 쌓는 일이었습니다(16~17). 
이것은 죄인의 본능이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숨기려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가인의 7대손 라멕은 셋의 7대손 에녹과 비교되는데, 
라멕은 일부다처를 시작한 인물이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잔인함과 복수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19~24). 
가인의 계보에서 발달된 문명은 저주 아래 사는 삶을 견디기 위한 
그들의 생존 방식으로 표현되고 그 비통한 삶의 유일한 위로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양식은 그와는 다릅니다.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주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26).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문명을 사용할 뿐, 
문명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지 않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태도를 배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의 특성은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만족을 찾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 사이를 극명하게 가르는 요소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서 시작된 죄는 점차 그들의 자녀들과 후손들을 통하여 무서운 속도로 확산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라인을 준비하십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은 가장 큰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잘 들어야 합니다. 
받은 은혜를 지나쳐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 다니엘 18-01-12
      “들에 있을 때에”(창4;8)

      가인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하나님에 대해 안색이 변하여 불평했다.
      결과는 살인이었다.

      놀라운 것은 예배에 관해서 받으시느냐 안 받으셨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죽음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예배의 성공 유무가 죽음으로 치달았다.
      아벨의 죽음.
      가인과 아벨은 서로 다른 존재였으나
      실은 내 안에 가인과 아벨로 공종하지 싶다.
       바른 예배가 내 안에 있는 아벨을 살게 하고
      그릇된 예배가 나로 하여금 가인되어서
      내 자신과 무수한 이들을 죽이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가인은 아벨과 함께 들에 있을때에 아벨을 쳐죽였다.
       왜 들에 있을 때에 였을까?
      나는 가인을 향한 이 표현속에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경건의 사람이 아님을 확신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들에가면 하나님이 안 계실 것 같아서!
      들에가면 하나님이 못 보실 것 같아서!
      그 골목에 가면
      그 커피숍에 가면
      그 집에 가면
      아무도 듣는이 없고 보는 이 없어
      무슨 말이나 어떤 행동을 내 던져도 된다는 것.
      그래서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곳이라면
      그곳이 가인이 서 있던 들에 있을 때에
      바로 그곳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으며
      쉽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것이
      들에 있을 때에
      그 이가
      가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를 생각한다.
      나는 가인이 아니던가?

      그래서 두렵다.
    • john 18-01-12
      이러한 예배가 되기를 (창 4:4~5a)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예배자의 모습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명일진대
      과연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오늘 나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드린 아벨의 예배.
      오늘 아벨이 드린 이 제사가 무릇 우리 모든 예배자들의 모범이 되는 예배일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야기하듯 그는 ‘믿음’으로 예배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믿음,
      나를 대신해서 어린양이 희생되었다는 믿음,
      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믿음.
      이 믿음으로 예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흠향하셨다.

      그러나 오늘 나의 예배는 이러한 모습에서 멀어 보인다.
      습관을 따라 예배하고, 상황과 조건을 따라 예배하고, 나의 필요를 따라 예배하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가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질책하셨던 때와 같이
      그저 형식적인 예배만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게 된다.

      죄로 인해 찢겨 죽어야 할 ‘나’이지만,
      세상 죄를 짊어지신 어린양 예수께서 나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오늘 내가 이렇게 숨 쉬며 예배하고 있음에 감사하는 예배,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히 교제하여
      내 영혼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예배.
      이러한 예배가 나의 예배가 되기를 소원한다.
      그로 말미암아 진정한 예배자로, 날마다 삶의 예배를 드리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