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12-창세기 5장 통독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1-12
  • 526 회
  • 3 건
5장 죄가 넘치는 세상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하나님의 은혜

5장은 아담 자손의 계보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반복되는 ‘죽었더라’는 말을 통해서 
모든 사람의 죽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며, 
죄의 결과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소망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저주에 대한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어진 에녹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인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리고 이제는 교회가 세상 앞에 보여주어야 하는 
삶의 양식이고 부르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굳이 에녹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죽었더라”는 말대신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쓴 것은 
죽음의 지배를 받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생들에게(히2:15) 
소망이 있음을 보여주려는 하나님의 의도 때문입니다.
죽음의 시대에 하나님과의 동행이 생명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지요.

에녹의 생애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 비해서 현저하게 짧았습니다. 
특히 그의 아들인 므두셀라(제일 오래 산 인물)가 969세를 누린 반면, 
에녹은 365세를 누렸습니다(23). 

보다 분명하게 성경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영생을 누리는 것이 참된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임재를 보면서 사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요17:24). 
비록 죄는 첫 사람 아담을 통해서 들어왔고 또 확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한 백성들 가운데 
유유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자리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 다니엘 18-01-13
      “이것은 아담의 족보를 적은 책이니라”(창5;1)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5;3)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계보가 아브라함에서야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11장까지의 역사속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즉 거룩한 계열의 사람들이 그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을 가장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 족보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으니
      족보는 지루한 것이 아니라
      내 신앙의 방향성이고 근거이며 핵심이구나 싶습니다.

      창세기는 아담이 범죄한 이후
      여전히 사랑하심을 보여주고 계심이
      가죽 옷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불환전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
      제사입니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신 것이
      가인과 아벨의 제사였습니다.
      성경은 아벨의 죽음 이후 셋을 소개하고
      이후 아담의 족보는 셋으로 이어집니다.

      공식적인 성경역사의 족보는
      아담이 셋을 낳은 것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에는 수 많은 인물들이 존재하지만
      기록된 것은 거룩한 족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구나 싶습니다.
      또한 장자가 아니라
      대부분 둘째를 중심으로
      거룩한 족보가 이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생의 장자가 아니라
      영적 장자의 중요성을 보여줌을 깨닫습니다.

      이 말씀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자신이 장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출생과 영적 장자의 역할을 하는게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해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누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면
      영적 장자가 될 수 있는 은혜의 메시지는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담에서 셋으로 이어지는 족보는
      창세기 5장에 보니 노아에게로 이어지고
      다시 아브라함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담에서 노아,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족보를 보면서
      창세기 5장의 족보가
      아주 중요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노아홍수, 바벨탑 사건, 소돔과 고모라 사건,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통해서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고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선포되어지고
      이루어지는 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앞으로 읽어가는 창세기 내용이
      기대되고 흥분됩니다.
    • john 18-01-13
      진정한 복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낳고, 죽고, 낳고, 죽고… 무심코 지나치던 말씀 가운데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깨닫게 하시는 귀한 시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등장하는 아담의 족보 속에서
      오늘 본문은 ‘에녹’이라는 한 사람을 주목하고 있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에녹.
      그는 다른 이들에 비해 장수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을 누렸다.

      세상에서는 무병장수하는 것, 입신양명하는 것이 복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복을 누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하지만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모든 인생들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참 된 만족과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출세한다고 해도
      하나님 없는 인생은 공허함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뿐임을 고백하게 된다.

      오늘도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관이 나를 사로잡아
      더 잘 먹고, 더 잘 살고, 더 잘 입는 것에 관심을 빼앗길 때가 있지만,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 나에게 필요한 복이 무엇인가, 앞으로 나를 살게 할 복이 무엇인가 분별함으로
      진정한 복을 향해 달려 나가기를 소망한다.
    • 느헤미야강 18-01-14
      노아와 에녹의 동행에 관한 원어연구를 통한 묵상의 글이 좋아서 올려 놓습니다.

      에녹의 동행의 삶
      동행: 할라크 에녹의 삶은 모든 신앙인들의 모범이다.
      하 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5:21-24에 짧게 기록된 에녹의 삶의 행적에서 동행의 비결과 내용을 헤아려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 많은 힌트를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동행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동사 1)할라크이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무려 1,562번이나 사용되었다.
      기본적인 뜻은 ‘걷다, 가다’이다.
      이 히브리어 단어에는 ‘동행’이라는 특별한 의미나 개념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걷기’를 의미한다.
      뜻이 단순할수록 쓰임새는 오히려 다양하다.
      ‘할라크’라는 동사도 함께 쓰이는 동사나 목적어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1. 짐승과 피조 세계의 움직임
      가장 일반적인 의미가 사람의 걸어감(출 14:29 - “바다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을 뜻하는데 사용되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짐승의 움직임, 물의 흐름과 소리의 확대를 포함하여 폭넓게 사용되었다:

      뱀의 기어다님(창 3:14 - “배로 다니고”),
      여우들의 노님(애 5:18 -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
      배의 항해(창 7:18 - “방주가 물 위에 떠다녔으며”),
      물의 흐름(창 2:14 -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나팔소리의 커져감(출 19:19 -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이상의 몇 가지 대표적인 용례만 살펴봐도 ‘할라크’라는 동사는 사람의 걷는 동작뿐 아니라
      짐승과 사물의 모든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사람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운행되는 것까지 포함한다.

      뱀이나 여우가 움직이고 배가 물 위에 떠다니며 물이 흐르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모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시 78:39)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호 6:4),
      비가 내리고 “그치는”(아 2:11) 것들도 모두
      동사 ‘할라크’가 쓰였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처음 창조한 창조의 모습대로 움직이며 동행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심으로 동행하길 원하는 대상은 창조의 면류관인 ‘사람’이다.

      2. 하나님의 ‘오심’과 사람의 ‘패역’
      그래서 ‘할라크’라는 동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해 찾아오시는 것을 나타내는 경우에 많이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삼하 7:23),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시 80: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출 33:14),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출 13:21),
      “내가 네 앞서 가서”(사 45:2).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바람을 뿌리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릇된 길로 가고 말았다.
      하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달려나가 맞이하는 동행의 삶을 살지 않은 것이다.
      거짓 신들을 따라갔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대로 행하였다.
      이를 이사야 선지자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사 9:2)이라 표현하였다.
      모두 ‘할라크’라는 동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패역한 삶의 행적을 묘사하고 있다.

      3.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
      패역한 세상, 하나님의 ‘오심’을 뿌리치고 제 갈길로 갔던 사람들 틈에 에녹과 노아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창 5:24, 6:9).
      에녹과 노아의 ‘동행’은 히브리어 ‘할라크’의 재귀동사(히트파엘형) 2)이트할레크가 쓰였다.
      1,562회의 ‘할라크’ 동사의 쓰임 중 재귀동사인 히트파엘형으로 쓰인 것은 60회인데,
      이 중에서 ‘동행’으로 번역된 것은 에녹과 노아의 경우(창 5:22,24, 6:9) 단 세 번뿐이다.
      이처럼 ‘할라크’ 동사는 함께 쓰인 동사나 대상에 따라 ‘동행’의 의미를 갖게 된다.

      에녹과 노아는 분명히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반드시 마음의 일치가 있어야 한다.
      인생의 동반자인 부부가 동행하기로 작정한 것도 마음이 맞아서다.
      그런 부부일지라도 마음이 틀어지면 결국 갈라져서 동행의 삶이 끝나게 된다.
      에녹과 노아는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기에 동행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순종하려 애쓰는 삶이다.
      하나님 또한 에녹과 노아의 마음을 받아주시고
      그들의 삶에 지팡이가 되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4. 마음을 나누는 동행
      예수님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마 11:17) 세대를 한탄하며 책망하셨다.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 대한 질책이었다.
      이 비유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동행의 삶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남의 기쁨을 질시하고, 남의 슬픔을 조롱하거나 비웃는 경향이 많다.
      남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며 축하해 줄 때 상대방은 나를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게 마련이다.
      남의 슬픔을 같이 슬퍼하며 애통해 할 때 상대는 큰 위로를 받게 된다.
      인생을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겪는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에녹과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공유했다.
      하나님 또한 여느 피조물보다 사람과 함께 동행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할라크’) 완전하라”라고 명령하셨다.
      여기에 쓰인 ‘할라크’ 동사를 에녹과 노아의 경우에 대입하면
       “너는 나와 동행하여 완전한 삶을 살아라” 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에녹과 노아처럼,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은 ‘동행’하기를 원하셨고, 명령하신 것이다.
      에녹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여 심판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축복을 받았듯,
      오늘 우리 또한 이들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구원의 축복에 동참하는 역사가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