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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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창세기 6장 통독 가이드
- 느헤미야강
- 2018-01-13
- 488 회
- 2 건
창세기6장.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창세기6~8장은 최초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난 홍수 심판이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대한 하나의 전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인간 세상 속에 들어온 죄악이 헤아릴 수 없는 속도로
계속해서 확 산되는 죄의 속성을 창세기 6장은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많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 이야기는
실로 그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해석도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셋의 후손을,
사람의 딸들이 가인의 후손을 의미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난한 해석입니다.
이들은 섞여서는 안 되는 것이 섞였고,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갔습 니다.
거룩은 죄와 섞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어느 사람에게도
삶의 기준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음을
창세기 6 장은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은
그 구별을 스스로 무너뜨려버렸습니다.
결국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120 년 후에 있을 것이 선언되게 이릅니다(창6:3).
하지만 이런 심판의 메시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오늘날 교회는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심판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8절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어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부연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을 만납니다.
이 구절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특징과 열매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 노아를 통해서 심판 후에
세상의 질서를 보존하시고 다시 세우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놓치지 않고 강조한 것은
그의 의인됨과 하나님과 동행함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노아가……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22).”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우습게 여긴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비록 죄악이 무성하고, 어두운 세상이 되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에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원리는 동일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 람이라면,
우리는 그 말씀의 권위를 알 것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결코 우습게 여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징지어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가?
창세기 6장을 통해서 이 두 가지 사실을 권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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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긴과보아스 18-01-14
-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8절)
지금껏 창세기 6장을 노아의 의인됨과 완전한 자(6;9)에 초첨을 두고 읽어왔다.
노아 당대에 모두 죽고, 오직 노아와 그 가족만 살아남았다.
노아의 가족만 살아남은 이유가 의로웠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성경은 행위 구원설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성경을 읽으니 8절 말씀이 눈에 더 들어왔다.
노아가 의롭고 완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읽혀졌다.
노아의 여덟 식구는 살아남았다. 구원받았다.
그 이유는?
바로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는 것을 뜻한다.
만약 대가라면 임금이나 삯이라고 해야 한다.
노아는 의로운 대가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노아도 구원받을 자격이 없었기는 매 한가지였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악한 존재였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악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술을 잔뜩 먹고 벌거벗은 채로 잠이 들었다.
성경은 이것이 지속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아들 함의 실수도 있었으나
노아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본성이 악했다.
노아도 홍수로 인해 죽어 마땅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0).
아무리 생각해도 노아도 자기의 노력이나 공로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된 것이 틀림없다.
물론 굳이 노라의 의인됨과 완전함을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노아가 의인됨때문이라면
나는 전혀 구원의 은혜를 받을 가망이 없어서이다.
먼저 은혜를 받았고,
노아가 잘한 것은 은헤를 받은 자 답게 산 까닭에
방주를 짓고 구원받은 것이 순서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성경을 읽어보았다.
하나님의 은혜는 노아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과 평소에도 늘 동행하고 순종하며 친구가 되어 살았다.
어쩌다가 한번만 동행한 것이 아니라
늘 습관적으로 동행했다.
그래서 노아의 삶은 달랐다.
하나님과 거룩한 동행 습관적인 동행 가까운 동행 이었다.
거룩한 분과 습관적으로 가까이 하니 거룩한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닐까?
죄악된 말을 하지 않았고
죄악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죄악된 장소에 가지 않았던 것.
극도로 악한 시대에 하나님과 가까이함이 가능함을
노아가 보여주는 것 같다.
노아를 보라고,
노아는 가능했다고,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의를 전파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120년 동안 산 속에서 방주를 만들었다.
많은 놀림과 비아냥, 정신병자 소리 들었을 거다.
그래도 묵묵히 감당했다.
앞으로도 심판이 있다.
물이 아니라 불로 심판할 것이다.
세상은 불로 망할 거다.
세상은 전부 망하여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오직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거기서 살아 남는 법!
노아가 가르쳐 주는 것 같다. -
- john 18-01-15
- 값비싼 은혜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 6:22)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신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하나님의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아들을 내어주신 값비싼 은혜마저 값싼 것으로 여길 때가 있었다.
거저 받은 것이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청난 은혜를 받았으니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당대의 의인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였음이 나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던 노아(7절)는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았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에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
그리고 오늘 노아의 이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은혜는 은혜대로, 삶은 삶대로 각기 다른 모습이 아닌,
은혜 받은 자로서, 받은 은혜가 얼마나 값비싼 은혜인가를 아는 사람답게,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기로 결단한다.
그리하여 나의 삶이 은혜 받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