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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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9(수), D6묵상, 요15:12-14

  • 최고관리자
  •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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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6묵상 가이드: 개요]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내어주면서 사랑의 궁극적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위한 완전한 희생이 되실 때 의지적인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은 자기 마음대로 살 자유가 있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할 힘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서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모범을 따르라고 요청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진짜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의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자신의 필요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더 중요하게 여길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경건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3).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도 같은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그분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의 육신의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말입니다. 우리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하나님의 친구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 본문내용 해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15:12). 

주님의 모든 계명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12). 어느 특정인에게만 사랑의 의무가 지워진 것이 아니라 교인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의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결론처럼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 된 자로서 맺어야 할 궁극적인 열매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의 열매, 신실의 열매, 봉사의 열매를 쉬임없이 맺어 가야 하지만, 그 모든것은 최종적으로 서로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일 수도, 주님의 제자일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한 나무의 가지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그의 가지들입니다. 만약 누구든 사랑하지 않으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주님의 가지 되었음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가 됩니다. 주님의 가지 된 자기 정체성을 바로 인식하고 있는 자라면,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그림을 이렇게 그릴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수많은 가지, 성도들이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그 가지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가지마다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어, 그 열매를 농부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쓰시게 합니다. 

사랑이란 구체적으로 오래 참고, 온유한 것, 허다한 죄를 덮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전혀 다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투고 난 뒤에 서로 화해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2. 질문하기 

1) 여러분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여러분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나요?

2)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여러분이 포기해야 할 이기적인 욕망이 있나요?

3) 이렇게 하려 할 때 그리스도의 모범을 묵상하는 것은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 최고관리자 23-11-29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를 우리와 예수님으로 비유하셨다. 나뭇가지에게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땅 속의 뿌리에서 먼저 싹이 돋아나고 줄기가 나오며 그 줄기에서 첫 번째 가지가 뻗어난다. 그리고 계속해서 두 번째, 세 번째 가지가 연이어 뻗어난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먼저 나온 가지들이 더 튼튼하고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가 점점 더 자라나 키가 커진다고 해서 먼저 나온 가지들이 계속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자라나도 먼저 나온 가지는 여전히 가장 밑자리에, 가장 늦게 나온 가지가 맨 위에 자리를 차지한다.
      나무의 가지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나온다. 그러므로 나무의 가장 윗자리는 언제나 가장 강하고 가장 오래된 가지가 아니라, 가장 나중 되고 가장 연약한 가지의 차지가 된다.  그래서 나무는 아무리 크게 자라도 균형과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가지 위치의 순서가 뒤바뀌어 버린다면, 오래되고 강한 가지가 나무의 윗자리를 차지한다면, 나무의 균형과 안정은 그 순간에 깨어져 버리고 만다.

      나뭇가지에게 사랑이란 구체적으로, 나 보다 약하고 나보다 나중 된 가지를 내가 밑에서 받쳐 주는 것입니다. 가장 늦게 되고 가장 연약한 가지에게 최정상의 영광을 양보하는 거다. 만약 강하고 오래된 가지가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그 나무의 가지가 아니다. 그 나무의 진짜 가지라면 그렇게 할 리가 없다.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행하여야 할 사랑이 바로 이것이지 싶다.

      어떤 교회가 정말 사랑의 공동체일까? 누구든 새로 들어오는 교인이 오래된 성도들로부터 진정으로 존중과 높임을 받고 소신껏 봉사할 수 있는 교회이다. 정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진짜 주님의 교회, 진정 주님의 가지 된 참된 그리스도인들만 그 일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교는 내가 모든 면에 걸쳐 남의 위에 있을 조건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겸손하게 스스로 아랫가지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기 부인이요, 자기 부인이란 곧 삶 속에서의 순교를 의미한다. 강하고 오래된 가지가 약하고 나중된 가지 밑에 거하는 것은 곧 순교요 자기 부인입니다. 가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나무의 가지인 까닭이다.  바로 그 순교의 정신을 통해 사랑의 열매가 맺어진다. 그래서 사랑을 이야기하시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2~14).
      약하고 나중 된 자를 사랑하여 기꺼이 그 아래에 거하는 순교, 자기 부인을 감수할 줄 아는 자를 가리켜 주님께서는 '나의 친구' 라 부르고 계신다. 그 사람은 정말 주님께 속한 주님의 사람임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