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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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마음 이해하다 - 민14;26-35

  • 야긴과보아스
  • 2017-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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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캐나다에 오기전에 가족 휴가를

남해안 일대로 다녀온적이 있었다.

그 중에 순천만 일대를 둘러보는 코스에서였다.

억새풀의 장관을 바고

그리 높지 않는 산에 있는 전망대를 가고자 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기에 지체하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종일 피곤한 길에 굳이 해떨어지기 전에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는 마음때문인지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아이들은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산을 올라가 주는 것도 감사할 일인데

서둘러야 한다는 것도

유난히 더운 날씨도 아이들은 불평거리였다.

그러니 걷고 오르는 시간을 더디기만 했다.

제대로 순천만 갈대숲을 해떨어지기전에 보기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떼어놓고 먼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 겨우 도착해 30분도 머물지 못하고

해 떨어져 내려온 적이 있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그때의 일들이 떠올려졌다.

 

자꾸 죽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가슴이 좀 아팠다.

나보다 더 나쁜 사람들도 아닌데,

너무 쉽게 죽어 나가는 걸 구경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맘까지 들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은,

광야시간을 40년으로 연장하셨다.(14:34)

저는 솔직히

하나님이 너무 하신다 싶었다.

 

근데, 지난 날 그리 멀지도 높지도 않는 산과 거리를

얼르고 달래며 다녀온 여행이 떠오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님은, 정말,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가나안에 몽땅 들이고 싶으셨을 거다.

 

신발이 벗겨지고

땀은 온 몸에 흠뻑,

마실 물을 떨여져만 갈고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버티고 섰을 때

가야할 목적지가 코 앞에 있어도

그럼에도 아이들을 버려 둘 수 없었던 것 처럼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빨리 올라가서 경치를 볼 수 없는 것처럼

가족 모두 함께 늦더라도, 조금이라도 보아야 하는 것이기에

시간이 걸리는 거였다.

 

아이들의 속도와 걸음을 맞추다보니

늦어 지기도 하고,

지체 되기도 하고,

땀도 더 나고,

힘도 더 들고,

그런 거였다.

 

모세, 갈렙, 여호수아 처럼

충성되고, 성숙되고, 가능성 있는 사람만 들여 보낼 작정이셨다면

가나안엔 세명만 들어갔을테고,

금새 들어갔을 것이다.

 

하나님도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씨름하고 계신 거 였음을 깨닫는다.

일부는 죽이셔야,

<최대한의> 일부를 가나안에 들이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때, 어쩔 수 없이 잃어버렸던 백성 때문에 마음이 아프셨던 걸까?

그런 일들이 하나 하나 쌓이면서

예수님 보내실 생각을 하신 건 아닌지...

천국에만은 한사람의 낙오자도 안 만들고 싶으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신 것과 없는 것 차이가,

이렇게 클 수 있겠다 싶다.

 

나의 현재가,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이 나를 싫어 버리심으로,

나를 대책없는 광야에 내버려두신 건 아니니까.

안전 안전하게 조심 조심해서 끌고 끌고 가 주시는 게,

눈에 보인다.

 

가끔은, 신발이 벗겨지고, 덥다고 투덜대며 걷기도 하지만

이렇게, 불편하고 시간낭비같아 보이는 광야를 걷게 하심은,

그렇게해서라도 함께 걷고 도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려는 의도임도 깨닫는다.

 

그 하나님을...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