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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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마음, 세대교체 - 민20;14-29

  • 야긴과보아스
  • 201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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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건

28절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꼭대기에서 죽으니라.

 

출애굽 이후 모세와 늘 함께 했던 아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로 앞에 두고

아론이 오늘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온 회중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이 죽은것을 보고

위하여 삼십 일을 울었다고 한다.29

 

나도 민수기를 묵상하며

아론과 함께 했었는데.

 

모세가 아론의 옷을 벗겨 그 아들 엘르아살에게 입히매

아론이 그 산꼭대기에서 죽었다고 하신다.28

 

아론은 제사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에봇)을 아들 엘르아살에게 물려 주고는

호르산에 올라 이 땅에서의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여정 중

아론은 하나님께 여러번 불순종했었다.

하지만 죽기 직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24그 열조에게 돌아가고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잠잠히 호르산에 오른다.

 

처음 보다 끝이 중요하다

 

제자 훈련.

사람을 세우고 제자됨을 이어가게 하는 자리.

말씀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는 것,

나도, 믿음의 공동체식구들도 그런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건강도 근력을 키우는 일이나

운동을 하는 일에도

시작한 뒤에 꾸준함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끝까지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들어 더욱 느낀다.

 

 

아론은 자신이 입던 에봇을

자신의 아들인 엘르아살이 입는 것을 보고 죽었다.

아론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예수님도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죽을 것에 대해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죽음을 준비하며

요한복음 14:12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아론도 엘르아살을 바라보며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잘 할거야'. 

'잘하겠지!' 

'나보다 더 큰 일을 행하리라..'

 

오늘 말씀을 통해 새대 교체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아론에게서 엘르아살에게로

예수님에게서 12제자들에게로

나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

그 때를 위해 먼저는 공동체 식구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준비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는 일이다.

    • 다니엘 17-06-27
      어릴 적 모세를 구해준 누이 미리암도 죽었고,
      말 잘하는 형 아론도 죽었다.
      광야 생활 38년이 끝나는 시기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말았다.
      모세는 그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더구나 출애굽 2세대라는 자들이 물이 없다고 대드는 몰골들이
      어쩌면 1세대와 그렇게 똑 같은지 여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더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았을지..
      ‘이제 그만 가자’.
      ‘할 만큼 했으니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고 좀 쉬자’
      인간적으로 얼마든지 합리화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에돔 족속의 문제도 그렇다.
      엄격히 말하면 그들은 적이다.
      같은 조상의 후손이라고 한다면
      형제 족속답게 도와주어야 마땅하다.
      물이 아니라 음식을 주어서라도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을 하러 나섰다.
      모세와 백성들로서는 그들과 전쟁을 해도 정당한 듯 싶다.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대적하러 나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상이 같더라고 그것은 아닌 것 아닌가?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그들은 먼 길로 돌아갔다.
      왕의 대로가 끝나는 아라비아 광야까지 다시 내려가야 했다.
      그 곳까지 가야 비로서 에돔 땅이 끝나고,
      그 때부터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이다.

      생각할수록 분통터지고 화날 일이다.
      적어도 내가 모세라면 말이다.
       
      모세, 그 괴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그래도 내려갔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 어떤 것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합리적인 의견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주시는 말씀, 도전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임을...
      자기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대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만큼 귀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말씀이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왕의 큰길은 편한 길이고, 빠른 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길이다.
      그것에 비하여 여호와의 길은 험난한 길이다.
      불편한 길, 돌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내 앞에는 왕의 큰 길과
      여호와의 험난한 길이 항상 놓여 있는 것 같다.
      어느 길을 따를 것이냐?
      늘 선택은 나의 몫이다.
       
      왕의 큰 길은 끽 해야 디메섹으로 끝나는 땅의 길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험난한 길은 끝나는 길이 아니라,
      하늘로 이어지는 길이다.
      비록 보이지는 않을 지라도
      모세처럼 그 길을 선택하는 내 자신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