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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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음식 - 민21;1-9
- 다니엘
- 2017-06-28
- 907 회
- 1 건
5절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찮은 음식이라며 경멸한 음식은 만나이다.
불뱀사건이 일어난 후 어김없이 찾아온 새벽에도
하찮은 음식이라 부른 만나는 지면을 덮었을것이다.
여기 저기 널려있는 가족과 친척 이웃들의 시체 너머로
보이는 만나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전히 하찮은 식물이라고 생각했을까?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 했으나
실은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한 것이었고
그런 그들이 죽음의 자리에서 놋뱀을 바라보았다는 이유하나로
죽음을 면한 사람들은 손이 떨려서 만나를 제대로 거두기나 했을지 의문이다.
40년을 한결같이 어디로 이동하든지
쫓아와서 새벽이 오는 한 지면을 덮는 만나.
아침일찍 거두어 점심에도 저녁에도 이렇게 저렇게 요리해서 하루종일 먹는 만나.
살과 피가되어 광야를 걷는 힘을 준 만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죽이려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 하고,
불평을 하고 징계를 받아 엉망이된 하루를 보내는 날들이 많았지만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한결같이 만나를 만났다.
40년…이제 겨우 40에 십몇면을 살아가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리듯
내가 너에게도 그리하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으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 만나속에 숨어있는것 같다.
이런 저런 단점 약점 정도가 아닌
인간의 깊은 내면속의 추악함에도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표현이 바로 만나가 아니었을까?
인간이 살 수 없는 장소인 광야에서도
동행하신다는 증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자신을 실망시키고 절망해서 잠든 날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를 덮어버리는 만나는,
눈을 뜨면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지름길로 갈 수 없어서 쌓인감정이 폭발해 버린 이스라엘은
광야에서든, 지름길 위에서든,
가나안에서든 하나님께서 동행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광야길 같은 인생의 참의미는 ‘목적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에 있다는 진리가
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않는 것에 있음을 깨닫는다.
성경을 참 많이 알고 있다고 했지만
아는 것과 주님과 날마다 교제하고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앞에서
매일 매일 내려주시는 말씀을
하찮은 음식이라고 말하지 않도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피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야 그래도 매일 매일 먹는 음식앞에서
하찮은 음식이라고 했을거라고 조금 양보해서 이해해보아도
제대로 읽어보지도 묵상하지도 깨닫고 삶으로 살아내지도 않으며
하찮은 음식이라고 말씀을 생각했던적은 없었는가?
내 삶에 말씀이 하찮은 음식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매일 묵상하는 말씀이 하찮은 음식이 아님을!
너무나 귀한 깨달음 주심에 온통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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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긴과보아스 17-06-28
-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민21;3)
아랏 왕이 이스라엘을 선제 공격해 몇 명의 포로를 잡아갔다.
이에 격분한 백성들이 곧장 대응할 뻔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먼저 여호와께 서원하였다.
여호와께서 승리를 보장해주시면 마치 희생 제물을 제단에 바치듯이
그 성읍에 있는 모든 것을 멸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고 했다.
곧 몽땅 죽이겠다는 뜻으로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있다.
바로 38년 전 하나님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최초의 가나안 전투에서 패배한 치욕의 장소가 바로 그곳으로,
이제 설욕의 장소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이 ‘호르마’로,
장소는 같지만 그 때와 이 때가 다른 점이 있다.
38년 전에는 모세가 극구 말리는데도
이스라엘이 부득불 가나안 사람들을 공격했다.
즉, 이스라엘이 먼저 공격했다.
그 때 그들은 하나님께 뜻을 여쭈지도 않았다.
‘자기 의’에 빠져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결과 패전하여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들이
깔보고 조롱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38년 후는 적들이 먼저 공격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맞서지 않았으며 대신 여호와의 뜻을 물었다.
결과 대승하여 주변나라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두 역사의 갈림길에서 주요한 영적 진리를 발견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나름대로 뜻과 계획을 세워 추진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주변환경을 통하여 하신 일을 보고
따라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곧 먼저 나서기 보다는 섭리하심을 살핀 뒤 따르자는 것이다.
종종 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할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믿는 것을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맞을 수도 있지만, 다소 위험할 수도 있음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그 뜻과 계획을 잘못 생각할 수도,
그릇 판단할 수도 때문임을 말이다.
차라리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고 쫓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임을 깨닫는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위험한 것은 막아주고, 잘못한 것은 지적하고, 잘한 것은 칭찬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냥 놔두지 않으신다.
보내신 뜻대로 살게 하기 위하여 섭리하신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말씀을 통해서도 하지만 특별히 환경을 통해서도 하신다.
말씀은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지만,
여호와께서 앞서 행하신 일은
조금만 깨어 있어도 확연히 드러나
못 알아들을 수 없게 하신다.
마치 38년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대로 알아 들은 것처럼 말이다.
내 뜻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살피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