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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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와 아무개 (룻 4:1-12)

  • 순대리우스
  • 201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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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 앉아있다. 그의 표면적인 목적은 기업무를 자를 만나기 위함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룻과 나오미를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무를 자가 지나간다. 이 사람의 이름은 이름이 없는아무개이다. 훗날 다윗의 할머니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룻과 가장 가까운 친족이지만 역사 속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아무개로 기억될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룻과 가장 가까운 친족이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룻의 기업을 물러야 했고, 도덕적으로 친족의 궁핍한 삶을 돌봐야 할 사람이지만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돌아보지 않는다. 그리고 또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간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법적으로 가까운 친족이기 때문에 첫 번째로 기업무를 의무가 있었지만 그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라 할지라도 자기에게 경제적인 손해가 있으면 못하겠다고 거절하는 아무개의 삶. 아무개의 삶의 목표는 자기 자신을 위함이고 경제적인 손해를 안보는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의 이름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아무개일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움켜 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의 족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타적인 보아스와 이기적인 아무개의 삶에서 나의 인생의 목표를 발견하게 된다.

    • 야긴과보아스 17-05-09
      증명되지 않는 논리가 없듯이,
      과정과 절차 없는 공인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보아스는 그 시대에 유력인사에도 불구하고
      기업을 무르는 과정에서
      모든 절차를 빠지지 않고 밟았다.
      결코 갖고 있는 부와 영향력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다.
      도리어 착안하지 못할 일로
      후에 오점을 남길 까봐 만반을 대비했다.

      과정과 절차는 형식 같지만 소홀히 할 수 없다.
      혜안이 번득이는 공식도 증명되어야 공식이 된다.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은 한낱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보아스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지 않았다.
      10명의 장로의 손을 통해 들어 주었다.
      그분은 땅의 공인도 무시하지 않았다.
      정당성은 떳떳한 과정과 절차를 통해 얻어 질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이 옳고 바름이라 할지라도
      과정과 절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