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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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구분짓는 분명한 선(민 6:1-12)

  • 순대리우스
  •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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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구분짓는 분명한 선(6:1-12) 

나실인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되어 드려지는 자이다. 나실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사사기의 삼손이다. 그래서 나실인은 남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62절 말씀에 남자든 여자든 성을 차별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일에 있어서는 남자든, 여자든, 구별됨이 없다는 얘기이다. 중요한 것은 성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구별해야하는 것이다. 

구별되어지기 위한 조건은 세가지다.

첫째, 포도주나 독주를 멀리하고,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아야 한다. 지금 광야를 헤매고 있는 이스라엘사람들이 광야에서 포도나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적은 기회조차 포기할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께 구별된 삶이란 내가 지을 수 있는 죄의 지극히 적은 기회조차 버려야 하는 것이다. 

둘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주변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이 조금만 바뀌어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머리는 사람들의 눈에 가장 쉽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을 조금도 깍지 않고 항상 유지한다는 것은 영적 성결함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시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7절에 언급되었듯, 부모나 형제자매가 죽더라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나를 낳아주신 부모나 나와 한 피를 나눈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바쳐진 자는 하나님 것이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본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드려진 구분된 자들이다. 비록 죄악이 관영한 세상가운데 살아가지만 나실인이 지켜야하는 규례처럼 세상으로부터 구분되어져야 할 것이다. 문자적인 뜻 그대로, 포도주를 가까이 하고, 삭도를 대지 말고,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할 일은 없겠지만, 숨겨진 의도는 구분된 자로서 세상과 분명한 선을 긋고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세상 속에 묻혀 살고 있는 지금, 세상과 구분 짓는 분명한 선이 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 야긴과보아스 17-05-23
      본문의 나실인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헌신>을 결정한 사람을 말한다.
      서원한 나실인에게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성결>이다.

      내가 처음, 큐티를 알았을 때,
      하나님은 내게 성결하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셨다.
      고상하게 앉아서 성경지식으로 머리를 채우는 것이,
      거룩한 큐티의 goal 인줄로만 알았다.
      매일 인생 광야길을 걸어가니
      말씀으로 채우고 인도함 받으라는 당위성때문으로만 이해했다.
      그런데, 내게 성결을 요구하신 하나님의 본심은,
      거룩~거룩~하게 골방에 쭈그려 앉아있으라는 게 아니셨다.
      먼저 성결해지기를 애쓰고
      성결해 졌으면, 전적인 헌신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 후, 실제, 큐티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성결이 헌신으로 이어질 때, 온전한 성결이 되는 원리를 내게 가르쳐 주고 계신다.
      헌신으로까지 연결되지 않는 성결은, 무의미함도 깨닫게 하신다.

      종종 누군가의 기도부탁을 받고 기도하겠다고 하지만
      가끔 잊어버리고 그 책임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마다 내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겠네.
      기도 부탁도 조심스럽고 기도하겠다는 대답도
      함부로 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가끔씩 기도부탁을 받을 때
      내 삶의 고단함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됨을 위해서 마음쓰는 이들,
      혹은 말로 형헌할 수 없는 아픔의 기도제목을 나눌때가 있다.
      그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지 하면서도
      나태함과 게으름으로 책임을 놓칠 때 역시 있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서원한 나실인의 삶은
      참 귀한 도전을 준다.
      본의 아닌 실수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오랜 정결예식과 서원재이행 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실인이 되기로 결단하는 그 특심...

      내가 나실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역시 뭘 얼마나 헌신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헌신의 기본자세와 순수한 동기 이다.

      민수기 6: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년 된 수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로 드릴찌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때에 그 몸을 더럽혔은 즉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

      어찌 들으면, 너무 완벽한 삶을 요구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부정케 되었을 때 진 밖으로 나가라고 쫓아내었던
      이스라엘자손처럼은 대우하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쓴물을 마시고 넓적다리가 떨어져 나가 저줏거리가 된
      부정한 여인처럼은 끌고 가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여기서, 하나님의 관용의 마음을 느낀다.
      서원한 나실인에겐 속죄제를 통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죄인으로 태어난 평범한 백성 나실인이,
      스스로 성별돼 보겠다고 서원을 할 때,
      하나님은 어려움을 무릅쓴 그 나실인의 자원하는 심령이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웠을까?
      따라서, 고범죄가 아니라면,
      그 어떤 실수들도 덮어 주실 맘으로
      속죄제 제도를 마련해 두신 건 아닐런지...

      구약의 하나님도 나실인의 헌신을 이토록 귀하게 여기셔서 실수를 사해 주시는데,
      십자가에서 내 멍에를 함께 져 주시는 주님은,
      얼마나 더 관대하게 헌신 중 의 실수를 책임져 주실까?

      나도 혹 약속한 기도를 잊어버리거나
      건너뛰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럴때, 주님이 대신 내 실수를 져 주심을 믿고
      새로 날을 정하는 맘으로 다시 시작하면,

      하나님은, 이전 기도를 절대 무효화 시키지 않으시고
      오히려 곱하기 2 로 계수하셔서,
      응답을 당겨 주고 싶지 않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