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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 아닌 신앙 (눅 24:13-27)
- 순대리우스
-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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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 아닌 신앙 (눅 24:13-2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예수님의 시체는 아리마대 부자 요셉에 의해 돌무덤에 보관된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찾아가지만 돌문은 옮겨져 있고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근심하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해준다.” 이것이 오늘 묵상을 위한 배경이다.
오늘 두 사람이 엠마오로 가면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다. 모든 일이라 함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과, 죽음 후 부활했다는 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소개되고 있다.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일반 백성이 아니라,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며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토론한다. 신학적인 논쟁이다. 그러나 그들의 토론 속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 예수님을 옆에 두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옆에 계신분이 예수님이신지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 과연 그들의 신학적인 토론과 논쟁이 얼마나 예수님과 동떨어진 얘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여인들의 증언이 있지만 자신들의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 예수님에 관해 얘기하면서 정작 예수님이 빠져있는 알맹이 없는 토론과 논쟁.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갔고 동행했는데도 그 분이 누구인지 모른다. 직접 말을 걸어 음성을 들려주고 질문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려 해도 닫힌 영안은 열리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날의 신학의 모습이다. 예수님에 대한 수없이 많은 이론과 가설들. 가려진 진실과 외곡 되어진 진리들. 그래서 세상은 어둡다.
예수님은 그 어두움을 밝히러 오신 분이다. 그분은 신학적인 논쟁이나 토론 속에 계시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비천한 마리아에게 제일먼저 당신을 보이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사회적인 지위와 신분 속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오직 그분만을 사랑하시는 마음속에 계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학이 아니라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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