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생각이 서로 다르면 - 눅18;31043

  • 다니엘
  • 2017-03-23
  • 682 회
  • 0 건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34a)”


주님께서 벌써 세 번째 십자가의 고난을 언급하시고 계시는데도 제자들은

하나도깨닫지 못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올라가지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목적과

제자들의 기대는 너무나 천양지차의 것이 아니었는가?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의 마지막을 향해 가시는 것이다.

인류 대속의 대업을 이루시기 위한

그 마지막 여정을 향해 가시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제자들에게 그 내용을 수 차례 언급하신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이제야말로 로마의 식민통치로부터

이스라엘이 정치적 독립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독립된 나라의 통치자는 예수님이 될 것이고,

자신들은 그 나라의 통치자 그룹에 속해

나라의 요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하층민의 서러움,

피지배 민족의 서러움을

모두 씻어 버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중요한 전쟁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했을까?

 

분명 제자들은 주님과는 전혀 다른 생각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그리면서 꿈꾸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랬기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내 생각이 뭔가로 가득할 때,

내 기대가 전혀 다를 때에

다른 누군가가 어떤 말을 해도 나의 귀에,

나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아마도 제자들이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 하고 있었으면서도

주님과 제자들이 전혀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동시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오늘의 교회와 성도, 나는 어떨까를 생각하게 한다.

얼마나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할까?

과연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주님과 함께 가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몇 퍼센트나 될까?

그래도 있기는 있겠지만?

예수님 당시의 주님과 제자들과의 입장의 차이만큼일까?

더 안타까운 차이를 보일까?

아니면 더 그 간격이 좁혀졌을까?

 

성경은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34b)”

말씀이 감취어졌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어떨까?

나에게는 어떨까?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어떨까?

오늘날 교회에는 어떨까?

감취어져 있으므로 인하여 깨닫지 못하는 부분은 얼마나 많을까?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감취어져 있으므로 인하여 깨닫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합의 비중은 깨달아 알게 되는 것과 비교할 때

몇 퍼센트나 될까?

문제는 깨닫지 못함으로 인하여 놓치는 것들과

행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더불어 주님의 뜻에 반하여 행하는 부분들은 얼마나 많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 갈 수가 없다.

나의 한없는 부족함들을 성령님이 아니면

채우거나 보완이 될 수가 없다.

아무리 염려한다 해도 성령님의 인도함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의 힘으로, 나의 노력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령님께만 의존해야 한다.

감취어진 것을 깨닫게 하시는 이도, 성령님이시다.

그러기에 오직 성령님께 의존하여 겸손히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