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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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체포 전담특위! 눅20;19-26

  • 다니엘
  • 201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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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라고 기록된 이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즉 포도원 농부들과 포도원 주인,

그리고 주인이 파송한 종들에 관한 비유가

자신들에 관한 비유임을 알고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마음이 불일 듯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잡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19)

그러면서 또 이들은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씌워 잡을 기회를 노렸다.

한마디로 예수 체포를 위한 전담 특위같은 것을 구성하여 사람을 보냈다.

그래서 예수님의 추종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에 대해

구실을 잡거나, 질문을 해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려서 사람들에게 비난거리를 제공하고,

그로 인해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것이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다고 하였으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다.

그들은 오직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힘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반응하였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과 그 말씀에 반응하지 않았다.

 

반면 예수님은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으셨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주님은 늘 사람들에게 반응하신 것이 아니었다.

늘 아버지의 뜻과 마음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의 지혜로 문제를 넘어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사람들의 어떠함에 따라 반응할 이유가 없었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반응하실 때는 말 그대로

목자로서 목양을 위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하늘의 구원을 전하시기 위함이었고,

아버지의 공의를 선포하시기 위함이었을 때뿐이었다.

이 또한 사람들에게 반응하셨다기보다는

여전히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따랐으니

하나님께 반응하셨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어느 순간에든지

그 감정적 변화가 요동칠 이유가 없었다.

단지 주님께서 감정의 변화가 있었을 때는

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안타까움을 나타내시거나,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야 할 때이거나,

공의를 선포하셔야 했을 때뿐이었다.

주님은 늘 아버지 하나님께 반응하셨다.

그러기에 주님은 늘 하늘의 평강을 유지하실 수 있었다.

 

오늘 본문의 세금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내 자신과 주위의

믿음의 길을 가만히 돌아보면

자신에게 반응해주기를 원하거나

사람들을 의식하며 반응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반응하는 예수님과 백성들 앞에서

결코 그들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만 반응하는 사람들이

하늘의 지혜와 권세를 통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깨닫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들은

그 온전한 믿음의 기초 위에서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로만 가져가야 한다.

사람에게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그런의미에서 내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나는 과연 그런가?

정말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간다고 하면서도

때로 사람들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나님께서나의 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에

더 민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작은 반응에 내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볼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 때에 다시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여전히 모든 문제를 주님께로 가져가기 보다는,

그래서 주님 안에서 참 평강을 누리기 보다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민감해질 때가 있다는 점이

오히려 나를 안타깝게 만든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땅 모든 것

어느것이나 하나님 것 아닌적이 있던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나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한다.

오직 말씀앞에서만 반응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