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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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지도자는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눅11:37-54)

  • 로뎀나무아래서
  • 2017-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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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지도자는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눅11:37-54)

 

 

한 바리새인의 식사에 초대 받은 예수님은 처음부터 식사하실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차린 음식이 꽤나 화려하고 기름진 것들이었나 봅니다.

손을 씻지 않았다고 트집 잡는 바리새인들에게 한 말씀하십니다.

`그릇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너무 화려하게 사는 것도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입으로는 사랑과 구제를 외치면서 내 삶이 화려하면 그것 또한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랑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그릇 속에 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음식도 나누지 못하면서 사랑을 외치는 것은 위선입니다.

사랑은 많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구제는 주는 것이 아니라 내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주고자 하면 많은 것을 갖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주는 것 보다 갖는 것이 우선이 됩니다.

갖는 것이 우선인 삶을 살다보면 얼만큼 가져야 주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내 욕심만큼 갖지 못하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나누지 못하면 정작 많은 것을 가졌을때 나누지 못합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구제는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주여! 삶이 여유롭지 못하지만 작은것이라도 나눌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 다니엘 17-03-01
      저는 45-46절이 마음에 많이 묵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로 경고하자  함께 있던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자기들까지 싸잡아 경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율법 교사는 자신들은 바리새인들과는 다른데,
      마치 자신들도 바리새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취급 당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안았던 겉 같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교사가 이렇게 항의성 질문을 하자 지체하지 않으시고 ‘화 있을진저…’ 로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말씀은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46절)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율법에 기록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당연한 역할인데,
      문제는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율법이 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토대를 둔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는 열심이 지나쳐서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의 짐이 되도록 한 것이 너무 많았던거였습니다.
      그래서 율법 교사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너희 스스로도 지기 어려운 율법들을 백성들에게 지우고는 너희는 오히려 그 짐을 질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구나!”
      이것은 행함의 문제 순종의 문제이다.

      오늘날 입법자가 준법하는가?
      오늘날 목회자가 말씀대로 사는가?
      오늘날 나는 과연 순종하는가?

      여기에서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이 경고로부터 나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는 정말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내가 행할 수 있는 것만 말하고 있는가?

      나를 속여서는 안 되고,
      주님을 속이려 들어서는 안되고,.
      주님 앞에서 거리낌이 없어야 하며,.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이 없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본이 되고 싶습니다.
      본이 되어보겠노라고 오늘도 다짐하며
      주님 앞으로 한 걸음을 옮겨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