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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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두려워해야 할 것! - 눅12;1-12

  • 다니엘
  • 2017-03-01
  • 653 회
  • 1 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시인하는 참 신앙인


본문에서 참새는 하찮은 존재를 가리킨다.

머리털은 아무도 세지 않는 것이다.

두 앗사리온에 참새 다섯 마리면

한 앗사리온에 참새 두 마리인데

하나 덤으로 끼워주는 정도의 가치이다.

한 앗사리온은 물건을 사고 난 뒤 거스름돈 정도의 금액이다.

 

성경은 놀랍게도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말씀하면서

참새와 머리털을 비유로 드셨다.

외식을 누룩과 비교하셨다.

누룩은 빵에 넣으면 부풀게 하는 것이다.

외식은 원래 그 자체보다 더 부풀리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외식이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의식하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특정한 행동을 뜻한다.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예수님은 그것을 제자들에게 경계해야 할 것으로 말씀하셨다.

멋지다. 존경스럽다.

그렇게 누군가가 인정해주기를 바라나

실상은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억하심에 대해 얼마나

의식하며 살고 있는가?

내 삶, 누군가가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살면서

정작 하나님앞에서 어느것 하나도 빠트림없이

기억하시는 하나님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생각해보라고 하신다.

 

골방에서 하는 말,

다른 사람에게하는 말,

다른 사람이 알면 안되는 말,

하나님도 다 기억하신다 하신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러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들의 말, 비판,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다 아시고 기억하신다.

 

오늘 하루 모든 것 다 아시고

지켜보시는 하나님앞에서

늘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누구든지 그 사람을 내 곁에 있는 자 같이

생각하고 살도로 이끄심에 감사하다.

다 기억하시고 보시는 하나님을 정말로 두려워하는

오늘 하루의 삶,

매일의 삶 되기를 소망한다.


참 신앙인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심에 감사하다.

    • 야긴과보아스 17-03-02
      수많은 무리들이 주님께로 모여들었다.
      본문에는 무리 수 만 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서로 밟힐 만큼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말 많은 무리가 모여들었던 것 같다.
      이들은 무엇을 보고 모여들었을까?
      무엇을 바라고 모여들었을까?

      분명 이들이 모여드는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도 이들의 요구사항,
      이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을 것이다.
      세상적으로 말하자면 주님께서 뭔가를 이루실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 주님은 그 무리들에게보다
      먼저 제자들에게 집중하신다.
      그 와중에서도 주님은 무리들에게보다는
      자신이 직접 부르신 제자들에게 집중하신다.
      참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그 때에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라는 말씀이시다.
      무슨 의미일까?
      왜 그 순간에 이 말씀을 하셨을까?

      제자들에게 그 순간에 꼭 먼저 하셔야 할 말씀이
      이 말씀이라고 여기셨기 때문일 텐데
      왜 주님은 그렇게 생각하셨고,
      그리 말씀하셨을까?

      그 분위기를 생각해 본다.
      주님은 제자들이 괜스리 주님을 등에 엎고
      자신들이 중심을 잃고,
      공명심에 빠질 염려가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일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환경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이 바리새인들과 같은 부류로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급박한 그 순간에 제자들에게 집중하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신 것이 아닐까?

      주님은 외식을 주의하라고 명하신다.
      그런데 그 외식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라고 비유하고 있다.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의 영향을 받아
      외식에 빠질까 염려하셨던 것일까?

      그래서 말씀을 이어가신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2-3)”

      이중인격적 행동,
      외식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면서 경고하신 부분이다.
      비밀은 없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
      아무리 비밀스럽게 행한 일이라도 영원토록 가려질 수는 없다.
      반드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러기에 주님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린다고 말씀하신다.
      골방에서 귀속말로 한 말이 지붕 위에서 확성기로 퍼지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꼭꼭 숨겨 두어도 반드시 밝혀지게 되어있다.

      그러기에 홀로 있을 때에나 둘이 있을 때에나,
      또는 여럿이 있을 때에라도,
      또는 골방에 있을 때에나 군중들 앞에 있을 때에라도,
      아주 어두운 곳에 있을 때에나
      광명한 백주대낮에라도
      늘 그 언행과 마음의 질서가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과 제자들만 있을 때에나,
      이도록 않은 군중들 앞에 있을 때에라도
      늘 중심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여 가르치신 것이다.

      크리스천들의 영혼육의 일치,
      정신과 언행의 일치의 당위성 및 중요성을
      그 절박한 순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가장 공명심에 빠지기 쉬운 그 순간에 주님은 정확한 때를 이용하셔서
      가장 적절하게 교훈하고 계신 것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에 무엇을 하며,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 어떻게 행하는 가가
      그 사람의 사람됨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주님은 언제든지, 어떤 환경에든지 흔들리지 말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세상에 소망을 둔 그룹이 아니다.
      크리스천은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
      하나님 나라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럴 때 내 눈 앞에 아무도 없어도,
      캄캄한 어둠이 감싸고 있어도,
      수 많은 군중들이 몰려 들어도,
      광명한 빛이 밝게 비춰지더라도
      사실 그 모든 환경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직 주님께서 동행하시면, 주님과 동행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우치신다.
      주님이 온전히 나의 주인이 될 때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위탁 받은 것에 지나지 않으며,
      청지기의 역할에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임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청지기가 아무리 많은 물질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잠시 위탁 받은 것으로써
      주님의 백성들을 섬기기 위함인 것을 바로 안다면
      물질의 다소에 마음을 빼앗길 이유가 없다.

      건강도 시간도, 나의 마음에 사랑도, 긍휼도 모두 동일하다.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청지기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함을
      주님은 오늘 본문으로 다시 일깨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