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300년 전! - 열왕기하 23장

  • 느헤미야강
  • 2015-07-28
  • 726 회
  • 1 건
20150727(월) 말씀큐티와 영성일기
 
300년 전!
열왕기하 23장
 
 
유다의 마지막 부흥을 위해 개혁의 깃발을 올렸던 요시야!
율법책을 발견하고 말씀앞에서
자신과 백성들을 바르게 하고자 했던 왕.
23장은 유다땅의 우상제단을 허는 것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벧엘까지 올라가서 제단을 헐고 불태웠다.
 
성경을 읽을때마다 전율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 예언의 말씀과 어김없는 성취함 때문이다.
 
요시야가 태어나기 300년전!
여로보암이 벧엘에서 제단을 만들고 분향을 하자
한 젊은 선지자가 나타나
앞으로 유다에 요시야라는 한 왕이 나타나서
이 제단을 헐고
이 제단위에 사람의 뼈를 불살라 태울 것이라는
예언을 한 적이 있다(왕상13;2).
 
그리고 정확히 300년 후에 요시야가 그 일을 진행했다.
 
그 젊은 선지자는
그를 시기하는 늙은 선지자의 거짓예언에
이른 죽음을 당했다.
방심했기때문이기도 했지만
늙은 선지자의 질투심도 한 몫했다.
 
그런데
시기심이 한 젊은 선지자를 죽음으로 내 몰랐지만
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었다.
 
그 예언대로 요시야갸 300년후에
벧엘제단을 허무는 일이 이루어졌다.
 
말씀대로 되어졌다.
하나님 말씀은 이루어진다.
요시야가 그냥 개혁을 한게 아니었다.
하나님 예언의 성취의 도구가 된 것이었다.
모세를 부르신것도 그냥 우연히 부르신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부르실때부터 이미 작정하셨다.
나를 부르신것도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일이라면
내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드리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더 살피고 경외함으로 살아야지.
하나님은 말씀하신바를 반드시 이루신다.
 
음,
그런데 이 요시야를 조금 더 읽찍 부르셨으면 좋았을것을...
더 읽찍 쓰임받아 벧엘의 단을 헐고 뼈를 불태우며
이스라엘과 유다를 바로 잡을 수는 없었을까?
이른 심판에 앞서
기다리시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기회주심
그것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본다.
 
더는 기다릴 수 없으신 주님.
기다리시는 분이나 영원히 기다리시지 않으시는 분.
요시야를 통해
‘봤지? 너희들이 섬긴 우상은 확실히 틀린것을 알겠지?’
그렇게 심판의 종지부를 찍으시는 것 같다.
 
그런 요시야왕이 죽었다.
애굽과 바벨론의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유다땅을 거쳐 올라가는 애굽 바로느고를 쫓아가다가
므깃도에서 죽었다.
 
죽음이야 하나님의 영역이나
웬지 안타깝다.
 
부흥, 회복은 한 사람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닌데,
요시야만 애를 쓴것은 아닐까?
 
추상같은 왕이 밀고 나가니 따라가기는 하는데
곁과 속이 다르니
겉은 따라갔는데 속까지 함께 한 것은 아니었던것만 같다.
 
백성들이 지켜야 했는데.
기도로 요시야를 지켰어야 했는데.
요시야가 개혁을 일으켰을때
백성들이 진심으로 마음을 합하여 함께 기도했다면
주변정세와 하나님의 뜻을 더 살필수는 없었을까?
 
사도행전은
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기도하기를 힘썼을때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기도했어야 했는데’
뒤 늦은 후회에서
‘기도했더니’로 바뀌는
기쁨의 역사가
나로부터 시작될 수 있으면 좋겠다.
    • lydia 15-07-28
      오늘 큐티 말씀을 읽으면서 제 삶의 하루하루가 예배이기를, 하나님께서 기뻐이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이기를 기도했습니다.

      세상에 섞여 온갖 세상적인 요소들에 부딪히면서 살아가야하는 우리들이기에 부지불식간에 우리만의 우상을 만들고 하나님 앞에 나오진 않았는지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큐티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