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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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 慄 - 열왕기하 25;1-17

  • 느헤미야강
  • 201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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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30(목) 말씀큐티와 영성일기
 
戰 慄(전율)
열왕기하 25;1-17
 
 
戰慄(戰 두려워하다. 慄 소름끼치다)
어떤 일이나 사건을 보면서 소름끼치도록 두렵고 떨리는 마음상태.
 
 
1.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선대왕들들과 똑같이 계속해서 악을 행했다.
악행 가운데 하나가
계속해서 애굽과 손잡고 주변정세의 위기를
극복해보고자 하는 점이다.
이사야가, 예레이야가 항복이 사는 길이라
그렇게 외쳐도 하나같이 손잡은 것은 애굽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만큼 궁궐의 핵심세력들이
친애굽파가 많았다는 반증이다.
애굽공주를 후궁으로,
첨단군사 무기와 말을 들여오기 위해
솔로몬때부터 뿌려진 씨앗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수 백년 동안 유다 왕실에는
친애굽파 세력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왕들까지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그룹이
되어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왕인들 무슨 힘이 있었을까?
더군다나 나라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발상의 전환을 해야하는데
매너리즘에 갇힌 왕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왕이라면
누구인들 소용있었을까?
 
솔로몬,
그때는 그것이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을터.
그것이 자신과 나라의 운명을 발목잡게 될 줄은 몰랐을 거다.
오늘,
무심코 내 편의와 생각들로 결정하고 선택한 일들이
그렇게 되지 말란법은 없다.
더 말씀앞에서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언제든지 나도 그럴 수 있음을 깨닫는다.
 
 
2.
유다 19대 왕 여호야긴.
바벨론에 포로로 잡아간지 37년 만에 석방한다(왕하25;17 이하).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바벨론이 망하고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이 1차 귀환자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스룹바벨이다.
여호야긴의 손자이다.
 
다르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생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래전 왕위에서 끌어내려져 머나먼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올 때의 여호야긴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가 유다에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씨가 말랐을지도 모른다.
일찌감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었기 때문에
유다 멸망뒤 포로 생활이 끝난 뒤에도
유대인들을 이끌고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그들을 바벨론에서 살게 하고
그들이 돌아왔다.
남아 있었으면 다 죽었을 게다.
놀랍다.
‘전율’만 남는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전율감만 남는다.
소름돋는다.
하나님의 섭리에 온 몸이 마비되는 듯 하다.
 
하나님의 사람은 무섭다.
하나님의 사람은 절망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사람은 현재가 고통스러워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결론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