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배신을 압도하는 찬란한 사랑
- chesed
- 2016-03-16
- 793 회
- 4 건
마태복음 26장 1절-16절 말씀에는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가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분개하여 그 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는 못할망정 무슨의도로 허비하냐고 여인에게 질책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향유를 부은것은 당신의 장례를 위한것이라고 하시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이 행한일도 함께 기억될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릴적에 이 성경구절을 읽었을때는 한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자신의 귀한 향유옥합을 부었고, 그로 인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며 돌아가시는 예식을 준비하는 어떤 상징적인 요소가 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 구절을 읽어보았을때, 여인이 예수님께 드렸던 마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했으면 자신이 아끼는 가장 비싼 향유를 드릴수 있었을까?!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께서 여인의 마음을 보시고 얼마나 감동하셨으면 복음이 전파되는곳에 이일도 함께 기억된다고까지 하셨을까?!하고 묵상하던중에 불현듯, 어제 부목사님과 차안에서 나누었던 말씀 생각났습니다. 그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은 우리가 정말 어려운 가운데서 물질과 헌신과 마음을 드릴때에 그 마음을 헤아리시고 더 놀라운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것을 아시기때문에 우리의 형편또한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힘든가운데서 최고의 주님께 최선을 다할때 감복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리는 삶!'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향유는 매우비싼 향유였고, 여러명을 구제할수있는 정도의 값어치를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 여인이 편하고 윤택하게 살수있는 정도의 소중한 보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과감하게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것을 드립니다. 때때로 주님께 내 시간과 물질을 드릴때, 불평한적이 있습니다. 남들은 지금 이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거나 돈벌고 있을텐데.. 나는 뭐하는거지?! 아 이번엔 좀 편한역활을 맡고싶은데..구지 내가 이일을 다 짊어질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던 제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뿌린데로 거둔다는 말씀은 아마 내가 주님께 얼마를 드렸나보단 한번을 드리더라도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서 드리는건지 아님 불평을하며 대충 드리는건지에 대한 말씀인거 같습니다. 이번 사순절 하나님께 감동드릴수있는 저의 최선의 무엇일까요?! 맨날 시간없다고 하지말고 좀더 못잔다고 불평하지말고 시간을 쪼개서라도 내일부터 특별새벽기도회를 빠지지않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깨우침을 주시는 주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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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강 16-03-17
-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께서 감동하셨기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일도 함께 기억된다고 하셨을까?
이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헷세드님의 묵상이 참 은혜로 와 닿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삶,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모든 분들에게 같은 소망으로 자리했으면 좋겠습니다. -
- 다니엘 16-03-17
- 어떻게 알았을까?
마26;1-16절 말씀 묵상
↑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다가오는가?
1,2절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과 자신이 친히 팔리실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직 제자들을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함을 아신 주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6절, 시몬의 집에서 나사로 식구들과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 앉으신 주님이시다.
12절, 향유옥합을 깨뜨린 한 여인이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음을 아신 주님. 궁금한 점이다.
13절, 예수님의 일과 사역을 이해한 오직 한 사람의 헌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방하고 상처될 수 있는 상황에서 최고의 축복의 말씀으로 그 마음을 가득 채우신 주님이시다.
↓ 인간, 성경인물들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3,4절 인류의 죄를 대신담당하기 위한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대제사장들고 백성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악함까지도 선용하셔서 구속사를 이루어가시는 주님의 모습이 느껴진다.
5절,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보다 사람들을 더 의식하고 있다.
8,9절, 소유에 목적을 두는 사람은 누군가의 헌신의 가치를 모멸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10절, 잘못된 목적은 바른 헌신의 사람을 괴롭게 할 수 있다.
12절, 오직 한 여인만 예수님을 일과 죽으심을 알고 장례를 준비하셨다. 사랑과 그 행하심의 가치를 제대로 알면 어떤 희생과 수고가 들어가도 감당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13절,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죽으심의 의미를 알고 헌신하는 여인은 이 땅에서 최고의 기념될만한 축복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14절, 예수를 팔 기회를 찾는 한 인간 유다가 보인다. 자신의 목적과 소유의 원리에 적합하지 않다면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는 한 인간을 본다.
? 질문과 묵상
12절, 마리아는 어떻게 예수님의 일과 죽으심, 장례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제자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예수를 따랐다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들을때마다
그 의미와 내용을 주의깊게 살피고 마음에 새겼던것은 아닐까?
14절, 가룟유다는 왜 그때 팔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죽으심의 선언에 대해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여겼던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동안 따라다녔던 시간과 기대에 대한 허탈함에 대한 보상은 없었을까?
! 실천과 적용하기
두 종류의 사람이 보인다.
첫째, 예수님의 죽으심을 이해한 사람과 전혀 몰랐던 제자들.
둘째, 마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과 소유에 눈 먼 사람 가룟유다
한 여인은 예수님이 돌아 가실 것을 알고 눈물로 자기에게 가장 값비싼 향유를 머리에 부어 드리는 이 여인과 그것을 보고 허비한다고 말하는 제자들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깊이 인식하고 있기에 향유를 부어 드려도 아깝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을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을 아깝게 보는 제자들의 차이를 본다.
이 여인과 제자들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마리아는 성경에 나올때마다 늘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귀담아 들었던 것으로 소개된다. 단순히 예수님 곁에 계셨던것만이 아니다.
기회있을때마다 말씀을 사모하고 듣고 그대로 마음에 새겼던것 같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 여인의 향유를 깨트림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비한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이 여인만이 예수님의 일과 죽으심을 알았다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고 향유옥합을 드린 이 여인은 실은 옥합을 드렸으나 자신을 드린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오래 있었다고 함께 했다고 다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아닌것 같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때마다 그 가치와 진정성을 가지고 귀담아 듣지 않으면 내가 듣고 싶은것만 듣게 된다.
나도 종종 내가 듣고 싶은 것만 가려서 듣는다. 이것이 얼마나 오해할 수 있고 위험한 신앙이 될 수 있는지 깨닫는다.
적어도 말씀의 자리에서 가감없이 하늘의 말씀으로 듣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여인은 적어도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왜 오셨으며,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셔야 할 것은 알면 소유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것이 이해안되면 오직 소유에만 집착하는 한 인생이 될 수 있음도 보여진다. 나 역시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간절하고 그 사랑이 오늘 나를 여기까지 살게 했음을 믿는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쓸 수 있고 주님 이외에는 아까운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싶다.
무엇보다 도전되는 것은 한 여인의 깊은 헌신에 상처될 만한 말과 행동을 한 제자들이나 가룟유다에 대해 얼마나 상처와 아픔이 되었을까?
아마도 이 여인도 그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감동이 되고 가슴 적시게 되는 것은 최고의 말로서 이 여인을 칭찬하셨다는 것이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이 여인은 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 심령이 꽉 채우게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람의 말에 슬퍼하지 말고 예수 말씀으로 채우면 아파할 때 오히려 기뻐할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헌신과 열심에 대해 따듯한 말과 격려도 필요하나, 적어도 아픔과 상처되는 말을 하지 않는것도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열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자.
혹 비수같은 말이 들려와도 그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았으니 말씀에 더 마음두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
- 로뎀나무아래서 16-03-18
- chesed 님의 나눔에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그런 많은 핑계를 대지요,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아직 부족해서....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없는것은, 시간도 돈도 부족함도 아닙니다. 내 마음가짐이 주님을 향하지 못한것이 없는것입니다.
그런면에서 헷세드님의 고백은 충분히 주님을 감동시킬만한 고백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에 큰 감동이 있습니다.
내일부터 새벽시간에 뵈면 좋겠네요^^ -
- 그레이스 16-03-20
- 예수님 장례를 정성으로 준비하는 여인 처럼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는 헷세드님 처럼
세상에서 평가하는 잘 나가는 삶이 아닌
천국에서 인정받는 그런 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