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평안과 심판을 가르는 기준 - 눅10;1-16

  • 다니엘
  • 20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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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하나.


13-15절엔 예수님을 대적하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대표적인 도시들을 일컬어

그들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말씀하신다.

회개하지 않고 주님의 복음을 대적하였던 고라신과 벳세다

교만했던 도시 가버나움.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것은,

70인을 파송할 때 마을/도시 단위로 파송한 이유도 있겠지만

심판과 징계에 대해 마을/도시 단위로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점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도 그랬지만

한 지역 전체에 대해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가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때

이스라엘 전체에 대해 징계하셨다.

 

분명히 그 안에 의로운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도 의롭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

 

하나님의 진노나 징계는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 마을/도시/민족 공동체에 공통으로,

동시에 내려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게 하신다.

공동체 전체가 악으로 충만할 때,

이런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으나,

한 개인이 지은 죄도 공동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아담의 죄가 온 인류에게 끼친 것처럼...

한 사람의 삶은 곧 공동체의 삶이기도 하다.

개인주의와 되어있는 요즘 세대에

매우 중요한 각성을 하도록 깨우쳐주는 부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중히 여기신다.

 

나 한 사람의 바른 삶이

곧 공동체가 바르게 세워지는 삶임을 깨닫는다.

 

개인의 구원 문제와는 다르게

내가 거하는 마을/도시/국가가

하나님의 징계 아래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기에 거주하는 지역,

거주하는 세대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다.

 

내가 구원 받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지라도

내가 신앙 생활을 하는 데는 어려움을 겼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와 세대의 거룩성을 위해

참으로 깊이 책임을 통감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묵상 둘]


16절은 위의 도시들이 왜 환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주님의 복음을 듣지 않는 것,

복음을 듣는 자가 전하는 복음을 대적하는 행위 그 자체는

전하는 자를 대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주님에 대해 대적하는 것임을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위로가 되는 말씀임과 동시에

무서운 말씀이기도 하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곧 주님의 사자/대사로 위임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모든 믿는 자들은 주님의 대사임을 기억하도록 하신다.

 

대사는 자신 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늘 파송한 자의 권위를 대신하게 된다.

주님의 대사로 임명 받은 나는 믿지 않는 자들에겐

늘 주님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느냐,

주님을 전하느냐 그렇지 못하고

그들이 주님의 대적하게 하느냐 하는 것은

나의 삶이 어떻게 그들에게 비춰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신다.

 

주님의 대사, 하늘나라의 대사는

주님의 성품으로, 주님의 권위와 사랑으로,

삶의 모든 순간에서 주님의 덕과 영광이 드러나야 하며,

하늘나라의 권위와 영광과 사랑과 긍휼이 드러나야 한다.

그럴 때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심히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다.

 

물론 오늘 본문이

제자들을 파송하여,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대적할 경우에 해당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이러한 권능이 부여되었음을 알고,

나에게서 주님의 향기가 드러나야 함을 깨닫는다.

내가 그리스도의 빛을 발해야 하는 이유이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와 함께

전하는 자들의 거룩한 삶이 동반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