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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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생명연장의 빛과 그림자~! - 왕하20;1-11

  • 느헤미야강
  • 201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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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9(주) 말씀큐티
 

15년 생명연장의 빛과 그림자(1) - 빛

열왕기하 20;1-11
 

우리는 항상 과거에 대한 아쉬운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한 번만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때
하나님께 통곡함으로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셨다.
 
15년!
덤으로 받은 그 15년은 히스기야에게 과연
가치가 있는 삶이었을까?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조금 더 시간을 주시면
그 시간을 그만큼 후회 없이 잘 사용할 수 있을까?
 
 
목회를 하다보면 장례식을 자주 치른다.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부모님의 영정앞에서
대부분의 자녀들이 한결같이 말하는게 있다.
살아 생전에 제대로 효도한번 못 했는데
조금 더 사셨더라면 잘 해드릴 수 있었을텐데...
그분들의 마음과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때마다 마음에 드는 생각들이 있다.
정말 부모님이 조금 더 살아계시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지금 못해드렸다면 시간이 조금 더 주어졌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말에 돌에 맞아 넘어져도 진짜 거의 대부분은 아니다.
 
 
가끔 성도들이 그런다.
시간이 정말 너무 부족해요, 짧아요.
하루가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정말 잘 할 수 있을텐데...
교회도, 헌신도, 뭐든지 열심히 할 수 있는데 너무 할일도 많고 바빠요.
그러면 하루가 30시간이면
더 주어진 6시간동안 더 말씀보고 기도하며
찬양하며 사랑하고 더 섬기며 살아갈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지금 주어진 24시간동안 못하면 30시간,
아니 100시간이 주어져도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더 우선하고
그때도 여전히 그럴것이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빠듯하다고...

핵심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왕하20;1 그 때에 히스기아야 병들어 죽게 되매
 
그 때에!
 
본문상으로는 앗수르의 침략앞에서 승리한 뒤로 보이나
대부분 학자들은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전이라고 본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가
유다의 성읍들을 짓 밟으며 압박해 오는 시점에서
자신이 병들고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이었을것이다.
 
위기는 항상 최악의 타이밍에 온다.
가장 돈이 필요할때에 돈이 없고,
가장 시간이 없을때에 가장 바쁜 일들이 터진다.
 
히스기야가 그랬으니 기가 찰 일 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히스기야의 기도는
단순히 목숨을 연장시켜 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을 터.
 
히스기야의 기도가 감동이 되는 것은
앗수르의 침공앞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두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이고,
그때 그의 기도는 오직 하나였을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럼없는 삶
진실한 삶을 살려고 했던 것 기억해주시고
아직 내가 민족을 위해 해야할 일이 있다면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는 기도.
목적이 분명한 기도였다.
 
마음에 강력한 도전이 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럼 없는 삶과 진실한 삶은
위기앞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구나.
앗수르의 침략앞에서
유다 왕조를 지켜 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히스기야를 살려주신 것이구나.
 
기도에도 거룩한 목적이 있어야 되는 거구나.
그 사명 때문에 살려주신 것이구나.
 
오늘 나를 살려두신 것
사명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도의 응답이 올때,
어떤 기적을 체험할 때,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쉽게 속단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히스기야를 살려주신 하나님
단순기 통곡하며 기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아직 그가 필요했기에
들어주신 것이구나.

기도응답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영적원인이 있는 것이구나.
누군가 나를 위해 중보기도를 했거나,
믿음의 조상들의 섬김과 기도가 있거나,
아니면 하나님보시기에 그 사람이 필요하셨거나...

그러므로
늘 감사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