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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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보다 더 위험한 - 열왕기하 21;1-9

  • 케빈 코스트너
  •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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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1(화) 말씀큐티와 영성일기
 
므낫세보다 더 위험한 
열왕기하 21;1-9
 
 
 
1. 히스기야에게서 나를 보다.
 
덤으로 받은 15년 인생.
히스기야에게 있어서 15년 동안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중 하나는
아들 므낫세가 태어난 것이다.
아버지 히스기야가 죽고 므낫세가 왕이 된때는 12세.
히스기야가 불치병에서 나음을 입은 3년 뒤
즉, 42세에 낳은 아들이다.
불치병에서 나은 후, 늦둥이로 나은 아들이니
얼마나 귀했을까?
눈에 넣은들 아팠을까?
얼마나 애지 중지 키웠을까?
 
히스기야와 므낫세를 이야기할때마다
한결같이 이야기하듯,
어떻게 히스기야 같은 아버지에게서 므낫세와 같은
악하디 악한 왕이 나왔을까? 이다.
 
므낫세: 잊어버리다
 
아버지 히스기야의 선정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가장 악한 왕으로 등극한 사람.
없었으면 더 좋을뻔한 사람.
 
그런데
그로 인해 믿음의 여정에 대한 더 많은 생각을 하게하니
적어도 나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인 듯 싶다.
 
히스기야!
덤으로 받은 15년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누구보다 성경이 소개하듯 멋지게 살았던 히스기야.
히스기야보다 낫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는 없을터...
그러니 히스기야 왕이시여!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살았습니까?
그게 뭡니까? 그렇게 물어보기가 좀 그렇다.
그럼에도 덤으로 주어진 15년의 삶 뒤에 남은 '므낫세'의 행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히스기야처럼 살아도 므낫세가 나온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지금껏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 볼때
나의 인생은 어떠했는가?
기도하며 말하고 행동했는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합당하게 살았는가?
세상 것을 자랑하지 않고 늘 겸손히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았는가?
자녀들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제대로 된 모범을 보였는가?
오늘 하루가 전부인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정말 소중하고 가치있는 하루 하루가 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더 살피고 경계하게 된다.
 
 
 2. 므낫세와 백성들에게서 나를 보다
 
그런데...
 
이것이 더 문제아니었을까?
 
수21;9절,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 하였더라”
 
궁금하다.
므낫세는 둘째치고,
히스기야 밑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 했던 백성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돌변할 수 있을까?
 
백성들은 원하지 않았는데 므낫세만 원해서 그랬을까?
 
어쩌면 히스기야때부터 그들 마음속은 우상 종교를 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히스기야왕이 워낙 적극적으로 말씀으로 밀어붙이니 드러내고 반대하지 못했던것은 아닐까?
우리는 히스기야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그를 비정상적으로 생각했던것은 아닐까?
 
하나님 말씀만 신뢰하고 믿고 따르라는 여호와신앙에는 폐쇄적인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미 유다는 다른 나라들과 많은 문화적인 교류를 하고 있었기에
폐쇄주의, 하나님 말씀만 믿고 나가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어리석고 바보같은 짓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부국강병도 칼과 창, 병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이
혹 대책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여겨진것은 아닐까?
 
요즘같은 세상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고 밀어붙이고
밤낮없이 살아도 모라잘 판에
말씀읽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말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전해질까?
마음에 새기는 말씀이 될까?
 
어쩌면 므낫세는 이 백성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
요즘 말하는 ‘포뮬리즘’ 정책을 쓴 것은 아닐까?
 
백성들의 속에 있던 마음을 긁어주니 순식간에 따라가게 된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데...
하나님 없는 가나안족속들이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더 잘사는것 같은데...
바른 믿음, 바른 가치관이 없으면
언제든지 이렇게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 아닐까?
 
웬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살고 있는 나의 이야기요
성도님들이 처한 현실의 얘기라고 생각하니
더 많이 두렵고 떨린다.
잘 연구하고, 잘 전하고, 잘 알게 하고, 잘 살게 해야 할텐데...
 
그것 없으면
내가 므낫세가 될 수 있는거구나.
내가 므낫세가 되는 거구나.
 
아니 내 속에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근본이, 뿌리가 없으면
이 백성들처럼 될 수 있겠구나.
겉은 따라가는 줄 알았는데
속은 반대로 갈 수 있는 거구나.
겉은 변화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속은 그대로이구나.
그러고보면 므낫세도 악하나
므낫세보다 더 악한이들이 백성들은 아니었을까!
 
 
히스기야, 므낫세
그리고 백성들에게서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