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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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삶이 불편한가? 다행이다! (딤후 3:10-17)
- 순대리우스
-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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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디모데 후서 3:12)"
물은 기름과 섞이지 않는다. 또한, 빛과 어두움은 공존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자녀들과 섞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는 곳마다 어두움이 떠나가기 때문에 빛이 가는 곳마다 어두움이 밝혀진다. 그래서 어둠속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는 빛을 싫어한다. 세상의 사람들은 경건하지 못한 것들을 적당히 가려주는 어두움을 좋아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만약 세상에서 환영받는 사람이라면, 세상과 쉽게 섞여 핍박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하나님 쪽 보다는 세상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지금, 세상속의 삶이 불편한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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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긴과보아스 17-01-17
- 묵상1.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12절)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박해를 받는다고 한다.
초대교회와 같은 박해는 분명 오늘날에는 거의 없다.
선교지와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그러나 죄악과 영적 싸움은 더 심해졌다.
싸움에서 이기는 길은 오직 성경에 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것이다(14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17절)이
모든 성경말씀에 있다(16).
그런의미에서 오늘 말씀은
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배우고 암송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말씀이 우선순위가 되는 삶을 역설한다.
하루 하루 바쁘고 분부한 일상,
단 30분의 시간조차도 쉼과 편안한 시간을 내기 어려울때가 있다.
적어도 나에게 그런때는 정말 바빠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우선순위가 다른데 있을때이다.
분명한 것은
내 삶조차도 주일에 한 말씀 듣는 것만으로
나의 신앙을 유지하기에는 버거울때가 많다.
말씀 자체가 주는 능력과 힘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내 삶의 환경과 여건, 내 의지가 날마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갈 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대나무가 자라기 위해서 마디 마디에 생장점을 두어 자라게 하듯
하루 하루의 내 삶에 영적 생장점을 두는 것이
말씀 읽고 묵상하며 나누는 일이다.
하루 하루 그렇게 말씀에 내 인생을 뿌리내리고자 애쓴 어느날
분명하게 확신하는 것은
대나무가 5년째에 쭉쭉 하늘을 향해 자라나듯
내 삶과 신앙의 성숙도 그렇게 자랄 것임을 확신한다.
묵상2.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절)
그러나 라는 단어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박해가 따르고
악한 사람은 더 악하여져서 속이는 일이 많을지라도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말씀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무엇을 확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내가 가르치려면 정확한 지식이나 확신이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진리의 말씀에 관해서는
더욱 옳게 분별하여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확신하는 바 없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없다.
말씀에 보면 배우고 확신한 일이라는 것은
바울의 교훈과 가르침,
모든 성경 말씀이다.
세상에서는 속임 당하고 사기치며 배신이 난무한다.
세상에서도 그럴 일을 만나면 마음 상함이 크다.
반면에 진리는 생명과 관계된 문제이다.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 속임당하거나 잘못된 길을 가게 되면
속상한 정도가 아니다.
세상 속임수에도 땅을 치고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명에 관한 일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말 심각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있는 내 자신부터
생명과 진리의 문제에 대해서는 시큰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나는 무엇인가 가르치고 전하기에 앞서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가?
말씀을 알고 배우는 자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지는 않는가?
말씀외 세상의 일에 더 마음 빼앗기지 않는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기 위해 먼저 배우고 확신하는 일과
살아가는 일들이 내안에 자연스럽게 임하였으면 좋겠다.
일상의 삶이 말씀을 알고, 배우고, 연구하며,
순종하는 삶이 익숙함으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주님으로 내 마음이 푹 물들었으면 좋겠다.
주님으로 내 삶이 푹 물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성경이 만드는 온전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