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내일을 알았으면 그랬을까? - 왕하17;13-23

  • 느헤미야강
  • 201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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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0(금) 생명의 삶 큐티나눔과 영성일기
 
열왕기하 17;13-23
 
제 눈에 띄는 두 구절이 있습니다.
 
"여로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므로"(왕하17;22)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왕하17;23)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이후 그들만의 이주정책을 사용합니다. 정복국가의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정복국가로 보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반역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는 인종이 섞이고, 종교 또한 혼합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성경은
첫째가 우상숭배(왕하17;16~),
둘째, 말씀무시(왕하17;13-14),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때문(왕하17;7)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제 마음속에 두려운 마음과 함께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죄를 정리할때마다 '여로보암의 길로 갔더라'는 구절입니다.
벌써 250년, 19명의 왕이 모두 여로보암이 잘못 닥아 놓은 기로 갔다는 것입니다.
처음 길을 닦는 사람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싶습니다.
여로보암 자신도 이렇게까지 될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요?
내일을 알았으면 그랬을까요?
 
덮힌 들판을 걸어갈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언젠가 뒷사람의 이 되니라
- 김구 -
 
그러고보면 오늘 내가 걷는 발자욱 하나 하나가 더없이 소중하고
내 자신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나를 지켜보는 이들을 위한 몫이 그 속에 담겨 있음을 봅니다.
그냥 걷는 다고 길이 아니라는 거지요.
책임감있는 행보가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두번째로 말씀이 주는 묵상이 있습니다.
 
13절 후반부,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14절,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목을 곧게 하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그들 조상들의 목 같이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 주어진 심판이었습니다.
심판이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할때 심판이 즉각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여로보암2세때 가장 번성하고 풍요로울때 종교와 도덕, 정의가 가장 바닥을 쳤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당장 고난과 어려움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 볼때 더 잘되고, 복이 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사는 것이 더 성공하고, 유명해지며, 잘 살기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증언하기 위한 것임을 놓치면
오히려 세상 성공과 부요함이 심판으로 치닫는 결과도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세번째 주신 묵상은 이것입니다.
18절,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19절, 유다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관습을 행하였으므로
 
북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남유다에게도 동일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도 남유다는 같은 길을 갔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내가 일일이 다 실수하고 실패해서 배울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남의 실패에서도 배워야 합니다.
남유다!
덤 처럼 기회를 주셨으나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도 축복의 파도를 내가 타지 못하면 도리 없음을 깨닫습니다.
 
 
23절,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오래 참으시나 영원히 참지 않으시는 하나님!
참으심이 끝나는 때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는 남유다도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나의 삶속에서도 기다리시고 인내하심을 보이시지만
이제 거기까지라고 말씀하실때가 있음을 생각하면
역시, 오늘 하루의 삶도 주신 자리, 감당해야 할 작은 일 하나에도
부끄러움 없어야지 싶습니다.